[컬트소설] 목욕탕 (1)
기사입력 1999년 03월 01일 15시 22분
뽀얗게 수증기가 앉은 유리 안으로 여인네들의 벗은 몸뚱이가 희뿌옇게 흔들리며 시선을 훔치고 있다.
＜천녀탕＞이란 굵은 글씨체 아래로 다시 강조라도 하듯 붉은 색으로 덧붙여진 ＜여탕＞이란 글자가 매달린 두꺼운 유리문이 열리고 긴 퍼머 머리의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음료수 냉장고 곁에 놓인 자줏빛 소파에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던 여자가 금방 일어나며 호들갑스럽게 반기기 시작했다.
"어머, 이게 누구래?
요즘 언니가 하도 안오길래 단골 바꾼줄 알았지 뭐야?"
늘씬한 키의 젊은 여자가 키가 꽂혀있는 빈 옷장을 찾아서 들고있던 핸드백을 넣으며 고개를 들어 대꾸했다.
"나 이번에 한 한달 쉬었잖아.
이 동네서 달세 이만큼 싼 목욕탕 또 있으면 가르쳐 줘봐. 내가 괜히 단골이겠어?"
젊은 여자는 긴 퍼머 머리를 들추며 입고 있던 롱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한마디 더 건넸다.
"그리고 있지.
내 비지니스와 딱 맞는 이 집 간판. 천녀탕인지 창녀탕인지 내 입맛에 딱인데 바꾸긴 뭘 바꿔. 호호홋！"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의 취향대로 알아서 냉장고를 열고 요플레 두개와 우유를 꺼내던 주인 여자도 젊은 여자의 농담에 눈을 흘기며 눈에 보이는 억지 미소를 보냈다.
"근데, 여기 때밀이 하는 영순이 이모 아직도 있어?"
롱코트 안으로 실크제의 슬립 하나만을 걸쳤던 젊은 여자는 어느새 손바닥만한 끈 팬티 차림이 되어 옷장의 키가 달린 고무줄로 긴 머리를 대충 올려 묶으며 물었다.
"그럼. 근데 오늘은 영순이 이모는 안나오고 전번 달에 새로 들어온 이모밖에 안 나왔어.
새 이모도 괜찮거든.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들어가 봐.
그리고 우리 맥반석 증기탕 새로 했다. 얼른 들어가 봐."
우유와 요플레 그리고 잡다한 몇 가지의 목욕 용품을 담은 바구니를 내어주던 주인 여자는 젊은 여자의 가녀린 어깨를 살짝 잡고 탕 안으로 들이밀었다.
- 2 -
＜때미는 자의 독백＞
-목욕탕의 구석에 핑크색 커튼을 드리운 두평 남짓한 공간이 내가 일 하는 곳이다.
돈보다 더 한 짜릿한 쾌감은 커튼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이 안에서 만들어진다.
핑크색의 비닐 커튼이 작은 물방울을 떨구며 미묘한 떨림을 낸다. 바로 내 그 곳처럼….
-여자가 들어온다.
완벽한 곡선을 이루며 매끈하게 빠진 젊은 여자가.
분명 이 근처 창녀촌에서 일하는 여자다. 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여자는 하얀 타월로 머리를 감아 올리고 내 비밀의 방에 들어와 그 미끈한 몸을 내 쾌락의 도마 위로 눕힌다.
미지근한 물에 담가놓았던 때수건을 손에 끼우며, 난 마치 링 위에 올라선 권투선수가 된 기분이다. 반드시 때려눕히리라.[계속]
글·김혜진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작가 소개]
24세 여행가. 해외여행 가이드로도 활약하고 있다.
하이텔 아이디는 `SexyNo1'.
많은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과 철학을 글 속에 담아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대표작 `목욕탕'은 미묘한 남녀 관계를 여자 목욕탕이라는 독특한 공간속에서 개성있게 표현한 수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