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7)
기사입력 1999년 02월 26일 14시 03분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그림이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너의 목숨을 가져다가 영원히 끓는 지옥의 무저갱에 던져버리겠어. 잘 기억해 둬. 3일이야."
말을 마친 여자가 소리 없이 지하실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그때까지 벌레처럼 꿈틀대던 영신은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쥐어짜듯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나? 나는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지. 때론 빛이 되고 때로는 어둠이 되기도 하면서….
참 한가지 비밀을 얘기해줄까? '다빈치'를 알겠지? 그 녀석은 내 눈을 보고는 결국 그림 속의 눈썹을 없애 버리더군.
그래도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냈지. 아주 영악스러운 놈이었어.
그 대가로 그 녀석은 지금까지 천재로 추앙받았고…, 자네도 기대가 되는군. 잊지마…, 3일 후야. 킬킬킬…."
말을 마친 그녀는 지옥에서 울리는 듯한 마지막 웃음소리를 남기면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틀을 꼬박 세우며 그림 앞에 앉아 있던 영신은 힘없이 붓을 내렸다.
아직도 그려 넣지 못한 미녀의 두 눈은 여전히 해골의 그것처럼 휑하게 뚫려있었고 영신의 모습도 살가죽과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도저히 그릴 수가 없어.
내가 이 그림을 그려낸다면 내 미래는 확실히 보장되겠지만 차마 거짓으로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낼 순 없어.
더구나 내겐 이제 어떤 영감이나 능력도 남아있지 않고… 결국 마지막 방법은…, 살아있는 눈이 필요해！'
한동안 굳은 듯 생각에 잠겨있던 영신은 앙상한 손으로 천천히 전화기를 들었다.
밤거리를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연희는 영신과의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가벼운 흥분과 기대감에 젖었다.
사실 영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었지만 아직도 화단에서 주목받는 그의 능력만은 왠지 놓치기에는 아까웠다.
이제 조금 전의 통화 내용대로 영신이 그려온 새로운 '미의 화신'이 완성되었다면, 그는 분명히 우리 나라 화단에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며 재기할 것이 분명했고….
연희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천재와 그의 행복한 아내로 주목받는 자신의 휘황찬란한 미래가 펼쳐졌다.
택시에서 내린 후 연희는 어렵지 않게 영신이 알려준 약도대로 영신의 지하 작업실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계단 끝에 다다른 연희는 작업실 문을 밀치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밀폐된 공간이어선지 작업실에서는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겨 나왔고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연희는 영신이 알려준 대로 문 옆에 붙은 스위치를 찾아 한 손을 더듬어 나갔다.
이윽고 벽에 붙어있는 차가운 스위치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 왔고, 연희는 아무리 영신이 기다리고 있다지만 난생처음 겪는 지독한 악취와 두려움 속에 온 몸에 전해오는 알 수 없는 한기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서둘러서 스위치를 올렸다.
그 순간 칠흑같은 어둠을 깨뜨리며 두개의 형광등이 작업실을 대낮같이 밝혔고 잠시 현기증을 느끼던 연희의 눈 속으로 베일에 쌓여있던 작업실의 모습이 구석구석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연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업실 중간에 놓여있는 화폭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눈부신 나체의 미녀 그림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이제라도 기지개를 켜며 당장 몸을 일으킬 듯한 착각을 들게 했고, 경악에 찬 연희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쩜！ 저 여자는 그림이 아니야. 살아있는 것 같아. 영신씨 대단해요."[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