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4)
기사입력 1999년 02월 23일 14시 46분
`후후 … 다 틀렸어. 내가 창조주라고?'
세상 사람들이 다가올 따스한 봄바람을 기대하며 잠들어 가는 시간에 술에 가득 취한 영신은 이름 모를 거리를 비틀대는 모습으로 추적추적 걷고 있었다.
`후후후…, 멍청한 자식….
나는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그녀의 몸을 완성한지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도저히 그녀의 눈을 그릴 수가 없어.
그녀에게 어울리는 눈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내 머릿속은 백치처럼 텅텅 비어버렸고, 내 손도 더 이상은 붓을 쥘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지금까지 되지도 않을 개꿈을 꾸어 온 거야. 후후후… 바보 같은 놈….'
영신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가슴을 쥐어뜯었다.
"하하하…. 나는 바보 천치야….
아니 이 세상 사람 모두 병신 쪼다 들이야.
크크크…. 구더기 같은 인간들이 우글대는 세상…, 그 속에서 같이 꿈틀거리는 왕구더기….
그래 나는 더럽고 추악한 왕구더기야. 큭큭큭…."
수염이 뒤덮인 얼굴에 산발한 머리, 영신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미쳐서 헤매고 있는 광인으로 보였다.
그렇게 비틀대며 걷던 영신은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의 신호음 뒤에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약간의 새침과 오만함이 섞인 목소리는 분명히 연희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접니다. 조영신…."
"이것 봐요. 전화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 전화를 하는 거예요?"
"연희씨. 그러지 말고 한번만 만나줘요. 저는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왔고, 또 앞으로도 당신만을 위해 그림을 그릴 겁니다. 비록 지금 작품이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전 자신이 있어요. 이 그림만 완성되면 저는 다시 일어설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연희씨…."
"이것보세요. 영신씨가 그 그림 완성시키겠다고 한지 벌써 2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당신의 이름도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깨끗이 지워졌고….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 자신의 주제를 깨닫고 먹고 살 길이나 찾아봐요. 나는 당신같이 쓰레기 같은 사람에겐 관심이 없으니까…."
영신은 들고 있던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영신의 가슴을 칼로 후비듯 파고들었다.
"후훗… 쓰레기?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그래 … 그럴 지도 모르지. 이미 난 오래 전에 쓰레기가 되었지만, 내가 스스로 인정을 안하고 있을 뿐…."
공중전화 부스를 나선 영신은 누구에겐지 모를 욕을 쉴 새 없이 해대며 황량한 도시의 밤거리를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어갔다.
그런 영신의 주위를 스쳐 가는 사람들은 마치 더러운 짐승을 대하듯 혀를 차고는 잰 걸음으로 영신을 피해갔고,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빈정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던 영신은 천천히 가로등이 드문 골목길을 향해 휘적휘적 위태로운 발길을 옮겼다.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흘러내린 눈물이 영신의 양 볼에 그대로 달라붙기 시작했지만, 이제 감각도 잃어버린 영신은 어딘지도 모를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밤을 잊은 듯 일렬로 불을 밝힌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 양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신은 뜻밖의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길 잃은 아이처럼 길의 한 가운데에 멈춰 섰다.
'여기가 어디지?'
그때였다. 영신의 등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쉬었다 가세요."
갑작스런 여자의 목소리에 영신은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았다.[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