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잃어버린 청춘' 찾아 떠난 여행
기사입력 1999년 02월 21일 15시 19분
인기작가 신경숙씨가 먼 여행을 다녀왔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우물처럼 캄캄한 곳에 갇혀 있던 '나'를 되찾는, 길고 고단한 여정을 끝냈다.
신씨가 최근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 지성사)를 내놓았다.
제목은 그리스 민요 '기차는 8시에 떠나네'에서 따왔다. 스무 살 무렵, 금요일마다 허름한 음악다방에서 운동권 애인을 기다리며 듣던 노래. 8시를 꼭 약속시간인 7시로 바꾸어 신청하던 곡이다.
소설은 서른 다섯 살의 방송국 성우인 김하진이 스무살 무렵의 '사랑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얗게 증발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는, 그래서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주인공의 여로를 기록한다.
청춘의 한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김하진은 '마치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듯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 괴로워한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질인 미란의 자살소동을 계기로, 김하진은 본격적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나선다. 동료의 청혼도 거절하고 직장마저 그만둔 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과 찍은 사진 한 장이 유일한 통로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은 절실하다.
'느끼고 싶어요.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투명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요.' 그녀도 남들처럼 '생생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번 소설은 신씨의 기존 작품과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을 보여준다. 우선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에 서사의 옷을 입힌 것이 눈에 띈다. '나 혹은 가족' 일변도에서 '제3의 타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것도 큰 특징. 전화, 목소리 등 청각에 비중을 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중반에 가서야 주인공 김하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구성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고, 인간이 지닌 친밀성에 대해서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만 변화시켜 놓고 싶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소설의 힘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신씨가 소설의 효용가치를 믿으며 선보인 작품이다.
[임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