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2)
기사입력 1999년 02월 21일 14시 59분
현관문을 나서자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 위에 희망처럼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영신은 오랜만에 맡아보는 신선한 외부의 공기에 탐닉하며, 세상을 가득 뒤덮은 하얀 희망 위에 조심스레 하나씩 족인을 새겨나갔다.
`그래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이니까.'
카키색 코트 안에 베이지색 폴라 스웨터를 받쳐입은 연희의 얼굴은 가끔씩 스쳐가는 짙은 수심의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거예요?"
"저번 국선에 대상으로 당선된 뒤 당신은 우리 나라 미술계의 새로운 천재로 이름을 날렸고,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죠? … 제발 눈을 뜨고 세상을 한번만 둘러봐요. … 당신과 나는 얼마든지 주위의 부러움과 찬사 속에서 행복하고 풍족하게 살아갈 수가 있어요. … 제발 더 이상 저를 외롭고 힘들게 하지 말아요."
그녀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크고 둥근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
"제발. … 오늘도 그 구질구질한 작업실로 돌아가면 그땐 저도 따라가겠어요. … 그래서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당신을 꼭 구해내고 말겠어요."
주위 사람들의 호기심과 불쾌감에 찬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그녀가 절규하듯 소리를 쳐댔다.
영신은 머리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연희씨. … 정말 미안해. …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 오늘 나는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갈 희망을 찾았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영신의 눈 속으로 뭔가 결심을 굳힌 듯한 그녀의 차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좋아요. 당신을 믿고 앞으로 6개월만 더 기다려 드리죠. … 그 대신 그때까지 당신이 재기하지 않으면 당신과 나는 끝장이에요. 아시겠어요? 앞으로 6개월이에요. 무슨 수를 쓰든 성공하시기 바래요."
마지막 선고를 내리듯 차갑게 말을 마친 연희는 냉랭한 눈빛만 남겨둔 채 싸늘하게 카페를 나가버렸다.
작업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영신의 몸은 축 처져 있었다.
'문제는 골격이야.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물화를 그리려면 우선 인체를 그리기 위해 수많은 시체를 직접 해부한 다빈치처럼 정확한 인체의 골격을 이해해야 돼. …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여자의 시체를 구하지?.'
영신은 뽀득뽀득 밟히는 눈을 밟으며 깊은 고민과 생각에 잠겼고, 그렇게 한시간이 넘도록 눈길을 걸어서 겨우 작업실 앞에 도착한 영신은 천천히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걸어갔다.
그때였다.
"끼이익… 악…！"
어둠에 쌓인 정적을 뚫고 거친 브레이크의 파열음과 함께 여자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끔찍한 비명 소리에 잠시 멍하게 계단에 서 있던 영신은 허겁지겁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나갔다.
영신의 작업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도 위에 한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멀찍이 서 있던 승용차 한 대가 급가속을 하며 영신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주춤주춤 여자에게 다가가던 영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인도 위에 쓰러진 여인은 머리를 깔렸는지 목 윗부분이 완전히 으깨진 채 죽어 있었고, 뜻밖의 상황에 떨고 있던 영신은 갑자기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영신 외에 다른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망설이는 듯 서 있던 영신은 곧 그녀의 머리 부분을 잠바로 감싸고선 자신의 작업실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