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1)
기사입력 1999년 02월 19일 14시 38분
-프롤로그-
10년전 어느 미술대학의 강의실.
머리가 희끗희끗 벗겨진 교수가 강단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모나리자의 눈썹이 왜 그려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봤나?"
"정상적인 화가의 경우라면 인물화는 주인공의 특징을 놓치지 않고 세밀히 묘사하지. 하물며 다빈치와 같은 대가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세간에는 모나리자에 대한 말들이 많이 떠돌고 있지. 원래 눈썹이 없었다, 그리다 보니 눈썹이 없는 게 더 자연스러워서 일부러 빼버렸다 등등….
하지만 어떤 것도 확실하지는 않아. 그런데 설마하니 중세시대에 귀부인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일부러 눈썹을 빡빡 밀고 나타난다는 건 영 가능성이 없는 얘기인 것 같고….
사실 눈썹이 없는 여자가 자연스럽고 더 아름답다는 것도 역시 말이 안 되는
얘기고… 어떤가? 이유를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전혀 예상 밖의 뚱딴지같은 노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고 넓은 강의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때 중간 정도에 앉아있던 학생 하나가 수줍은 듯 천천히 손을 들었다.
"오, 거기, …군, 군은 이름이 뭔가?"
"손을 든 학생이 수줍은 듯 말을 더듬었다."
"예. 저는 조영신이라고 합니다."
"그래…. 영신군. 생각을 말해 보게."
"예…. 제 생각에는 다빈치가 눈썹을 빼고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는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 그래? 조금은 생각이 트인 학생인 것 같군. 좋아. 앉게. 다른 군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각자 그 이유에 대해서 한번씩 생각을 해 보게. 만약에 메시지가 담겨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이것으로 이번 수업은 마치도록 하지. 수고들 했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교실을 뛰쳐나갔지만 영신은 노트 위에 뭔가를 끄적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완전한 여인을 그리고 싶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신화 속의 비너스를 뛰어넘는….'(프롤로그)
며칠이나 지났는지 영신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먹고 배가 부르면 하얀 화폭을 노려보는 반복된 일을 시작한지….
그동안 화구 밑에는 생명이 없이 죽어버린…, 겨우 희끗희끗 골격만 갖춘 여인들의 시체가 수도 없이 하얀 종이 안에서 멋대로 구겨진 채 나뒹굴었다.
이번에도 영신의 눈 앞에 있는 화폭에는 어김없이 가녀린 골격만 겨우 드러낸, 혹시 앞으로 눈부신 미녀가 될 지도 모를 여인이 화폭 속에서 온갖 교태와 애교를 부리며 영신을 유혹했다.
＜이봐요. … 저예요. … 제가 당신이 지금까지 기다려 온 여인이에요. … 도대체 언제까지 저를 무참히 구겨버리실 거죠? … 이제 선택하세요. 저예요.＞
아직 갖춰지지도 않은 입으로 종알대는 그녀를 영신은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너는 … 아니야 … 너의 골격에는 생명이 없어 … 너는 그저 내게만 종알댈 수 있는 거짓 모나리자야.'
영신은 거침없이 손을 내밀고는 가여운 모나리자를 무참히 구겨버렸다.
그 순간 마치 그녀의 구겨짐을 축하라도 하듯이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필자소개]
송강민
30세 전후 직장인(`악몽따라…'에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신분과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대표작 `다빈치의 눈물'로 데뷔했다. 인간의 감정을 진하게 묘사하고, 엉뚱한 아이디어와 토속적인 문체로 감동을 이끌어내는 특징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