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중견시인들의 풍성한 '시잔치'
기사입력 1999년 02월 17일 14시 56분
여인의 옷자락보다 먼저 시단에 봄이 오고 있다. 삭풍을 뚫고 `시의 꽃'이 활짝 피었다. 중견시인들의 신작 시집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푸짐한 잔칫상이다.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해야 할 정도다.
사춘기 소녀의 일기처럼 낯간지러운, 술 취해 털어놓는 푸념같은 시들이 아니다. 작품세계는 다양하지만, 시는 한결같이 넓고 깊고 아름답다. 자신만의 완강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문학성을 이미 검증받은 시인들의 최신작이다.
최근 한달새에만 고은, 김춘수, 마종기, 최승자, 황지우, 안도현, 이문재가 새 시집을 펴냈다. 일필휘지의 원로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중견까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발간을 앞둔 시집도 많다. 어느 날 밤 꽃잎처럼 남몰래 진 요절시인 기형도의 전집이 그 하나. 시와 산문, 소설 등을 한 권으로 묶는다. 유하의 신작시집도 이달말 독자들을 찾아간다.
양만 풍성한 게 아니다. 베스트셀러도 있다.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는 두 달만에 7쇄를 찍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4만부 가까이 팔리며 종합 3위에 올랐다.
최승자가 5년만에 선보인 `연인들', 이문재가 6년만에 펴낸 `마음의 오지'도 반가운 시집들. 동화같은 산문으로도 유명한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이상 문학동네)은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의사시인 마종기 전집도 관심을 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단이 `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거품이 빠지고, 제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각 출판사가 시집 발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IMF한파로 인한 구조조정의 결과다. 문학적 성과가 확실한 시인들만 살아남는다.
"수준높은 고정독자를 문학시장에 묶어두기 위한 출판사들의 새로운 기획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게 황금가지 편집장 장은수씨의 분석. 그는 "이같은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갈라치기가 앞으로 더욱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