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섭씨] 20년간 출근길 길라잡이 '교통 예보관'
기사입력 1999년 02월 11일 15시 22분
"올 설 연휴 시내 교통 흐름은 원활할 전망입니다. 다만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차량들로 인해 재래시장이나 백화점 인근 교통은 다소 막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날씨만 예보관이 있는 게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정보센터의 권장섭 경사(49)는 시민들에게 시내 교통 흐름을 안내하는 `교통 예보관'이다.
시경에 설치된 113개 CC TV 화면을 분석, KBS 1TV의 `뉴스광장' `아침 뉴스'와 BBS 라디오의 `안녕하십니까, 홍승기입니다'에 고정출연해 강북강변도로를 비롯한 상습 정체 구간의 출근 길 교통 상황을 안내하고 있다.
권경사는 올 연휴에도 어김없이 독수공방 신세대. 장남이지만 방송 탓에 10년째 아내와 자식들만 노모(71)가 계신 고향 대구로 내려보낸다고 한숨짓는다.
그가 1년 중 가장 바쁜 때는 그러나 명절이 아니다.
"눈, 비 오는 날이 바쁩니다. 지난 여름 게릴라성 호우가 왔을 때는 밥도 못먹고 일했지요."
이 남자, 텔레비전이건 라디오건 목소리만 나가기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제 나이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부부도 있데요. 한번은 인천에서 스물두살 난 처녀가 `한번 사귀어보자'며 전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기분 괜찮던데요."
공인답게 곤혹스런 일을 당할 때도 많다.
"저는 마누라가 수십명이에요. 친척도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교통 순경한테 걸리면 "권장섭이 내 남편이다" "내가 바로 권장섭이 삼촌이다"며 둘러대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영남대 축산학과 출신인 권경사는 올해로 경찰 입문 22년째. 2년동안 잠시 교통순찰차를 탄 걸 제외하면 20년간 교통정보센터에서 교통 한우물만 팠다 한다.
`교통통'답게 지난 1일 서울 시내 내부순환도로가 완전개통됐는데도 불구, 이용 차량이 턱없이 적은 이유를 묻자 내부순환도로로 진입하는 램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답한다.
권경사는 주중에는 버스로 출퇴근하고 자가용은 주말에 가족 나들이할 때만 이용한다고.
"좌석버스에서건 자가용에서건 쉴새없이 눈을 굴리게 됩니다. 신호주기를 파악하거나, 우회도로를 찾아보거나…. 직업병인가봐요."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