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부드럽고 친숙한 우리말 상표 거리 점령
기사입력 1999년 02월 10일 14시 35분
우리말 상표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깜찍하고 귀여운 우리말이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는 것.
`잠뱅이' `옹골진' `지지배' `쌈지' `놈' `딸기' 등등.
중저가 의류나 지갑 가방 구두 액세서리 등에서 집중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한글상표들은 어감의 부드러움 뿐 아니라 제품의 성격을 연상시키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기도 한다.
청바지 브랜드인 `잠뱅이'는 여름에 바지 대신 입는 홑겹의 옷에서 따왔고 `옹골진'은 알차다는 뜻의 `옹골차다'와 영어 `진'의 합성어.
또 티셔츠 `지지배'는 나이 어린 여자를 지칭하는 사투리여서 통통튀는 20대 안팎의 신세대 여성을 겨냥한 의류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표기도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ZIZIBE'로 돼 있다.
발음은 토종, 글꼴은 외제인 셈이다.
우리말 이름은 한복에서 더 튄다.
변함없다는 의미를 지닌 `예나지나', 야외용임을 암시하는 `나들잇벌'을 비롯 `씨실과 날실' `여럿이 함께' 등 전통한복을 개조한 생활한복은 거의 우리말 브랜드다.
서울 명동 `유투존'에서 유통을 담당하는 정동혁 과장은 "브랜드가 우리 말이다보니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준다. 반응이 좋기 때문에 한글 브랜드는 당분간 강세를 이룰 것 같다"고 전망했다.
우리말 브랜드가 붐을 이루는 데 도화선이 된 것은 지난 93년 등장한 `잠뱅이'.
당시 이 청바지는 서울 신촌의 한 조그만 점포에서 출발했지만 여대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연 매출 200억원의 히트상품으로 성장했다.
우리말 브랜드가 인기를 끌게 된 데는 IMF도 한몫을 했다.
신세대들이 용돈이 줄어들면서 로열티가 붙는 외제에 비해 2∼3배가 싼 국산품에 눈을 돌리게 된 것.
이들 제품은 셔츠 2만5천여원, 바지가 4만여원, 비교적 고가에 속하는 재킷이라야 8만∼9만원이다.
신촌의 `잠뱅이' 매장에서 만난 대학생 이미연양(22)은 "재작년까지만해도 값비싼 유명 브랜드를 선호했지만 용돈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우리말 브랜드 옷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