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11)
기사입력 1999년 02월 08일 14시 32분
세영은 일격필살을 노렸다.
인형과 맞붙는 순간 가슴 부분에 칼을 깊숙이 찔러넣고, 그대로 아래로 그어 두 동강을 낼 계획이었다.
어차피 몸이 둘로 갈라지면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테니까 그 다음은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됐습니까?"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세영이 계획대로 접근과 동시에 그 가슴에 칼을 찔러넣는 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인형도 두 손으로 세영의 얼굴을 붙잡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얼굴 전체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눈앞이 컴컴
해졌다.
불에 덴 것보다 더 뜨겁게 머리 전체가 화끈거렸다. 그리고 고통에 못 이겨 두 손으로 머리를 끌어 안았을 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은 물론 머릿가죽이 통째로 벗겨져 나갔다는 것을….
"음, 후우！"
나는 또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의 얘기를 듣는 동안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꾸며낸 얘기, 또는 미친 소리라 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군요. 얘기 정말 잘 들었습니다."
내 인사치레에 오히려 그녀가 더 고마워했다. 그 정중한 태도와 예의는 도무지 미치광이라든가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빽빽하게 적어놓은 수십 장의 글을 정리하면서 결론에 들어갔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이세영씨."
＜예, 선생님.＞
"혹시 제가, 이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쓴다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모든 걸 다 잃었는 걸요. 생명과 자존심의 맨 밑바닥을 기어다니기도 했고요.＞
"예. 그렇군요. 집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얘기가 출간이 되면 제가 받게 되는 인세의 일부를 세영씨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제 얘기를 믿어주는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요. 그 사건 이후로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제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었죠. 그저 조금 꺼내기만 해도 미쳤다거나 사고 후유증 어쩌고 그런 취급만 받아 왔어요.＞
＜그러니까 제 말을 믿고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선생님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이제는 속이 후련하니까요.이제야 모든 병이 다 나은 것 같아요.＞
"예. 감사합니다. 아무튼 다음에 또 연락 드리죠."
나는 상대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잊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녀도 같이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그저 인사말에서 받은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육감 같은 것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미안한 사실이 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얘기를 다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않다.
특히 인형 귀신이 나오는 대목 같은 것은 거의 믿을 것이 없다.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병실 문을 나서려다 문득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때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창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그 액자.
앞을 보지 못하는 여자가 왜 굳이 그 액자에 연연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얼굴을 잃어버린 여자. 자존심을 잃어버린 여자.
이제 그 자신은 절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눈마저 잃었기에 옛 사진조차 볼 수 없지만, 그것은 그 여자의 자존심이었다.
자신이 미인이었다는 자존심. 적어도 예전에는 말이다.[이번 회 끝]
글·박무정(아이디:MirSin)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이번 회는 연재사정상 원문의 40% 가량을 줄였습니다. 하이텔에 들어가면 원문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회는 박무정씨의 `공포의 실험실-교환'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