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10)
기사입력 1999년 02월 07일 14시 44분
먼길을 기어온 탓에 이미 양쪽 팔꿈치와 무릎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복수를 생각한다면….
세영은 숯덩이가 된 공장의 나무토막을 넘고 잿더미의 바다를 건너 작업 라인 쪽으로 기어갔다. 작업 공정에 있던 모든 인형과 모든 재료들은 이미 잿더미로 변해버린 뒤였다.
그렇다면? 30개나 된다는 그 인형들은? 도대체 어디에?
그녀는 서서히 닥쳐오는 불안감 때문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빨리 찾아야 해！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임시창고！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외침이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무섭게 앞으로 돌진해 갔다. 거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공장 한쪽 끝에 도착한 그녀는 바닥에 깔린 철제 뚜껑 앞에 도착했다. 힘을 주어 그것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해야만 했다. 낑낑대면서 그 뚜껑과 싸웠다. 그 하나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것처럼….
끼기기기…. 그리고 그녀는 의지의 승리를 맛보았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이었다.
눈 아래 어설프게 만든 나무계단이 놓여 있었다. 원래 이곳은 제품창고가 아니었다. 가끔 원단에 부분 염색을 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가끔 생산 공정에서 일거리가 밀릴 경우 적치할 곳이 없어 임시로 반제품 인형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계단. 한 번도 이곳에 내려가 본 일이 없었다. 목발을 짚고서는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계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 나빴다. 이런 몸으로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까?
우당탕 쿵탕！ 악！
날카로운 비명이 지하실에 울려 퍼졌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하게도 지하실 안은 더 어두웠다.
그러나 큼직한 인형 무리를 찾아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녀는 등 뒤에 꽁꽁 묶어온 물건을 앞으로 끄집어냈다. 수건으로 싼 길다란 물건이었다. 수건을 풀자 안에서는 날카로운 식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얏！ 죽어라！
첫번째 인형을 향해 칼을 꽂아 넣었다. 칼은 인형의 배를 뚫고 깊숙이 들어갔다. 죽어라！ 죽어！ 다 죽어！
그렇게 한참 동안 칼부림을 했다. 인형들의 팔다리를 끊고 목을 잘라냈다. 설사 그것들이 죽지 않는 존재라 해도, 절대로 나다닐 수 없도록….
그래, 그렇게. 내 꼴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이 꼴을 너희들도 그대로 당해 봐라！
그 많은 인형들을 모두 난도질하고, 모두 능지처참한 뒤에 그녀는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그렇게 만족하면서, 인형의 시체 위에서 승리의 쾌감을, 가학성 변태적 스릴을 맛보았다.
그래, 다 끝났으니까. 모두 죽였으니까. 모두 죽… 모두?
문득 머리 속을 때리고 지나가는 번갯불이 있었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오른손을 훑었다.
그녀의 눈이 갑자기 커지고 있었다. 오른손, 그 손이, 그 손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 바로 조금 전에, 오른손이….
승리의 쾌감에 젖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을 때, 왼손 바닥엔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오른손에는 없었다. 그것은….
귓바퀴！ 그녀는 얼른 오른쪽 귀를 만져 보았다. 역시 없었다. 그녀의 오른쪽 귀는 없는 것이다.
귀가… 지난 밤에… 귀를… 그 인형이….
그 인형！ 아직 살아있어！
그녀는 바닥에 던졌던 칼을 다시 집어들었다.[계속]
글·박무정(아이디:MirSin)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