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토이어 - 인간의 잠재된 폭력성 그려
기사입력 1999년 02월 05일 15시 23분
사이코 범죄자와 정신과 여의사.
김명수와 손봉숙이 열연중인 연극 `토이어'(정일성 연출)는 이렇게 전형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갖춘 작품이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양들의 침묵'과 비슷하지만, 가드너 맥케이의 원작이 나온게 지난 70년이니 `원조'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영화와 달리 무대공간은 어둡고 제한돼 있어 두 남녀가 벌이는 생사의 게임은 관객을 더욱 짜릿한 긴장속으로 몰아넣는다.
토이어(Toyer)는 여자를 강간한 뒤 뇌기능을 마비시켜 버리는 미치광이 범죄자의 별명. 자신의 `노리개'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이다. 현대사회의 거대문명이 낳은 일종의 `돌연변이'로 인텔리이자 성공한 전문인인 여의사와 대조를 이룬다.
TV 드라마에서 주로 순박한 인물을 단골로 맡았던 김명수는 폭력에 심취한 정신이상자의 눈빛과 표정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 `평소의 캐릭터와 안맞지 않을까'하는 선입관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여의사가 자신의 몸속에 자라고 있던 폭력성을 깨닫는 과정. 침입자의 폭력에 저항해가면서 그녀는 자신의 몸속에 그와 마찬가지로 폭력성이 잠재해 있음을 느낀다.
`모든 것이 연극이었다'는 그의 말을 믿은 의사는 오히려 폭력을 즐긴다는 공통점에서 묘한 매력을 느껴 그를 유혹한다. 서로를 해치려던 두사람이 성욕에 의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정체를 눈치채고 재치있게 그를 제압한 뒤 그가 여자들에 해왔듯 머리에 메스를 들이대는 여의사의 모습은 예정된 수순.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사회가 강요한 폭력에 길들여져 있다는 메시지를 상징하는 결론이다.
중견 손봉숙의 연기는 다소 과장돼 보였지만 여의사의 캐릭터 변모를 설명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불가피했던 것 같다. 극단 미학. 28일까지. (02)4159884
[김형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