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SC] 쌍꺼풀 수술
기사입력 1999년 01월 31일 15시 17분
대입 면접이 한창이던 어느날 한 중년부인이 스무살쯤 돼보이는 딸과 함께 병원에 들렀다.
딸은 어머니와 얼굴은 닮았지만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은 그리 정돈돼 있지 않았다.
반면 어머니는 방금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온 듯, 밝고 겸손하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딸의 쌍꺼풀 수술때문에 왔다는 이 부인은 상담을 마치고나서 딸을 원장실 밖으로 잠깐 내보낸 뒤 나에게 당겨앉으며 "오늘 꼭 좀 수술시켜주세요"하며 애원하듯 부탁했다.
"쟤는 세쨉니다. 위의 오빠와 언니는 부모 말도 잘듣고 공부도 잘해요. 그런데 쟤는 딴판이예요. 이래라, 저래라, 하고 조금만 잔소리하면 듣기 싫다면서 대들어요. 요즘 딴애들은 대학을 고른다고 바쁜데 쟤는 3차, 4차, 전문대, 재수도 넘볼 수 없어요."
부인은 딸의 수능발표후 며칠간 드러누워 있었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딸을 위해 애태우고 기도했던 나날들이 너무 허망해서였단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쟤가 쓰레기 청소부가 돼도 즐거운 마음으로 리어커를 밀어줘야할 것이 아닌가하고요."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10여년 허망세월에 담겼던 한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업보처럼 느껴왔던 딸애의 모든 것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오더라고 했다.
자식이 어떠한 경우에 처하던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나니 그 순간부터 자식도 변하면서 부모를 신뢰하기 시작하더라고 털어놓았다.
"이젠 사랑을 회복하셨으니 내년에 대학준비 다시 시켜야겠네요."
"아녜요. 전 저 아이 그대로를 사랑할거예요. 자신이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부인의 이야기는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학생 어머님은 하시는 일이 뭐예요?"
"대학병원에 있어요. 전 내과의사예요. 원장님 말씀은 제 후배에게 많이 들었어요."
아, 그랬었구나…. 그 말을 듣고나니 원장실 바깥에서 기다리고있는 그 학생이 남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나는 수술을 집도하면서 어머니와 딸의 틈새를 예쁘게 꿰매주고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진세훈 성형외과 원장 (02)566-6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