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4)
기사입력 1999년 01월 31일 15시 17분
갑자기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이번에는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방안을 환하게 밝혀 눈이 멀 것만 같은 번개였다.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강렬한 불빛에 망막이 타 버린 것처럼.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번갯불이 대기를 불태우고 유리창을 핥아댔다.
그때 세영은 볼 수 있었다.
얼굴！ 창밖에 서 있는, 아이의 얼굴. 그 창백한 얼굴.
"아악！ 아악！ 아악！"
세영은 죽어라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비명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그 자신이 질러대고 있었다.
놀란 선예가 기겁을 하면서 세영에게 달려들었다.
"세, 세영아！ 왜 그래?"
"아악！ 아악！"
오히려 선예가 기가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짜증이 극에 달한 듯 선예도 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도대체 왜 그래?"
"저, 저기……."
그제야 자기 외의 존재가 있음을 깨달은 세영은 창문을 손짓했다.
창문을 돌아본 선예는 잠시 그곳을 응시하다가 다시 세영을 향했다.
"거기 뭐가 있다고?"
"사, 사람이, 어린애가……."
"뭐? 미쳤어? 어린애가 거기 왜 있어? 이런 날씨에…."
"아냐！ 있었어. 분명히."
이제 세영은 당장이라도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선예는 두 손으로 세영의 얼굴을 잡고 흔들어댔다. 그러나 세영은 계속 창문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저기, 저기 있었어."
"세영아！"
급기야 선예가 다시 악을 쓰고 나서야 세영은 진정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눈을 향한 채로….
"너, 꿈꾼 거야, 이 바보야."
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분명히……."
"이 바보야！"
선예가 세영의 말을 가로막았다.
"생각해 봐. 네가 지금 말이 되는 소릴 하는 건가. 꿈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니? 어린애가 저 빗속에 왜 서 있느냐고?"
"그-런가?"
그제야 세영은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윈 입가에서 가냘픈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건 꿈이었어. 안좋은 일이 있어서 악몽을 꾼 거라구."
"그-렇-구-나."
마치 고장난 로봇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 난 세영의 몸이 축 가라앉았다.
"근데 이 바보야. 꿈속에서 어린애 본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냐?"
"어, 그게……."
세영은 갑자기 머릿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처럼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그 애가 어떻게 생겼길래 그렇게 난리를 쳤니, 바보야?"
이제 선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에 웃음을 더할 정도로 여유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애는……."
"응, 그 애는? 뭐?"
선예는 그런 세영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바짝 다가앉으며 얼굴을 꼬집었다. 그러나 곧 튀어나온 세영의 다음 말이 그녀의 웃음을 빼앗아가고 말았다.
"얼굴이 없었어！"
-4-
비온 뒤의 하늘은 더욱 맑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세영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목발, 오늘 오전에 친구 선예가 출근할 때 그랬듯이, 목발을 짚고서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선예가 퇴근길에 취업정보 신문 한 부를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친구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사양을 했었다. 내가 직접 가져오겠다고….
"어? 세영이…."
막 골목길을 나가 큰 길에 접어들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슈퍼마켓 주인 아주머니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응. 다행이네. 살아있었구나?"
"예?"
글·박무정(아이디:MirSin)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