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한달간 심혈기울여 만든 새 '국새'
기사입력 1999년 01월 28일 15시 04분
홍익대 조소과 김영원 교수(52).
인물조각가로 이름을 날려온 그가 이번에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일을 하나 해냈다.
`나라도장' 국새(國璽)를 새로 만든 것이다.
봉황 한 쌍이 서로 마주보며 구만리장천을 나는 형상이다.
김교수가 행정자치부로부터 맨 처음 국새제작 참가권유를 받은 것은 작년 9월 중순.
행자부 사무관의 `이고초려'(二顧草려)에 작품을 내기로 결정한 김교수는 조각용 왁스(봉랍)를 붙들고 한 달을 신간한 끝에 쌍봉 모형을 탄생시켰다.
집채만한 화강암을 깎고 다듬던 조각가가 쌍봉의 웅비를 조막만하게 나타내자니 얼마나 짜증스러웠을까.
우여곡절 끝에 10월 20일 모형을 내 으뜸으로 뽑혔다.
누가 어떤 모양의 작품을 더 냈는 지는 모른다.
국새에 대해 하도 말이 많아 행자부에서 아예 의뢰에서부터 선정, 제작에 이르기까지 극비에 붙여버렸기 때문이다.
1, 2등 작품이 청와대에 들어가 최종 심사대에 오른 걸로 봐 여러 전문가들이 의뢰를 받았던 모양이다.
11월말 "당신 것이 됐다"는 최종통보를 받고 12월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우선 경기도 광주의 정밀주조공장 `예술세계'에서 거푸집을 만든 뒤 KIST 최주봉 박사팀의 감독하에 경기도 용인 `한국MK전자'서 진공주조법으로 작품을 뽑아냈다.
여기에 서예가 여원구씨가 만든 글자판을 붙이고 전체적으로 다시 조각, 12월말 마침내 18K 720돈(2천700g)짜리 보물 제작을 갈무리했다.
"IMF로 인해 뒤뚱거리는 국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 김교수는 처음부터 사면초가에 부딪쳤다.
우아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봉황에다 어떻게 용호와 같은 기운을 불어넣는단 말인가.
고민끝에 봉황을 단순화시키는 대신 해태와 백제시대 봉룡(鳳龍)향로에 쓰인 문양을 끌어들였다.
기능적인 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손잡이를 잡을 때 검지와 중지는 쌍봉의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균형을 잡게하고, 엄지와 약지는 몸통과 꼬리사이로 쏙 들어가 전체를 단단히 떠받치게 했다.
누구든 편안히 잡을 수 있으며 눈감고 잡아도 앞뒤가 바뀔 염려가 없을 만큼 똑 부러지게 해놨다.
"봉황 한 쌍이 어떻게나 까탈을 부리는지 말입니다. 눈은 너무 작아 제 눈을 아프게 하지요, 아무리 용을 써도 기운을 내지도 않지요. 다 끝내고 나니까 10년은 늙은 기분이 들더라니까요."
그렇다고 김교수가 숨돌릴 겨를을 찾은 것은 아니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3．1독립기념탑 제작 때문이다.
국새가 국민들에게 공개되던 지난 26일에도 그는 용인시 죽전의 한 돌공장에서 정과 쇠망치를 쉴새없이 놀리고 있었다.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