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매니저 - 선수들 뒷바라지 '손과 발'
기사입력 1999년 01월 28일 15시 04분
매니저는 선수들의 `손과 발'이다.
상담원, 통역원, 기사 등 매니저는 날마다 얼굴을 바꿔가며 사는 `카멜레온'이기도 하다.
페넌트레이스 6개월은 물론 스프링캠프 등 1년 내내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프로야구 매니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매니저? 어떤 매니저를 말하는 거야?"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에 오면 두명의 매니저를 만날 수 있다.
매니저(manager)는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감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국내에선 팀의 사무적인 일이나 뒷바라지를 전담하는 직원, 즉 주무를 뜻한다.
미국에서 우리가 말하는 매니저는 `care taker'라고 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매니저가 하는 일은 수십, 수백가지에 달한다.
원정숙소나 식당 예약, 선수단 예산 관리, 이동 스케줄 작성 등은 기본적인 업무.
바쁠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공도 주워야 하고 운전기사가 되며 영어 일어 등 어학능력이 있으면 통역원으로도 변신한다.
온갖 궂은 일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오해가 생긴다.
매니저를 심부름꾼 쯤으로 아는 고참선수들이 "은행에서 돈 좀 빼달라", "동사무소에서 서류좀 떼어달라"는 개인적인 일까지 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혹시라도 선수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까봐 치밀어 오르는 속을 꾹꾹 누른 채 은행이나 동사무소로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떼기도 한다.
하지만 매니저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구단간을 이어주는 `완충 역할'.
1년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바로 매니저다.
게다가 선수출신 매니저가 많아 평소에 "형, 동생"할 정도로 선수들과 유대관계가 각별하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나 구단 프런트에게 얘기 하지 못하는 고민을 매니저에게는 훌훌 털어놓는다.
어떤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을 때 코칭스태프나 구단에선 경기력의 문제로 넘겨버리지만 매니저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가 많다.
현역중 가장 오래된 매니저는 현대 최재필과장이다.
지난 85년 청보에 입사, 2군 매니저로 출발한 최과장은 그동안 3년간의 내근을 빼고 1,2군 합쳐 벌써 12년째 매니저 생활을 하고 있다.
팀도 청보→태평양→현대까지 세차례나 바뀌었다.
워낙 오래 매니저로 일하다 보니 이젠 눈빛만 봐도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라고 한다.
매니저로 현장에서 뛰다 보면 잊혀지지 않는 일들도 많이 벌어진다.
두산 선수들 사이에 `큰 형'으로 통하는 김태룡과장은 지난 94년 `선수단 이탈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칭스태프의 체벌에 반기를 든 선수들이 전주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대절, 상경하려고 하자 김과장은 버스 앞을 가로막고 "이러면 안된다. 가려거든 차라리 구단버스를 타고 가라"며 울음섞인 고함을 질렀었다.
애환많았던 8년을 뒤로 하고 올해부터 새로운 운영팀 업무를 맡게 된 김과장은 "매니저를 하면서 그때가 가장 가슴아팠다"고 회고한다.
1년 365일 매니저는 마음편한 휴일이 없다.
오로지 선수들 뒷바라지에만 온 신경을 쓴다.
그만큼 고생이 많다.
그래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가장 굵은 눈물을 쏟아 내는 사람들이 매니저다.
[김상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