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 (1)
기사입력 1999년 01월 27일 14시 50분
"그 환자는 지금 상대할 게 못 돼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예? 왜요?"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까요."
의사가 말했다. "지금 후유증이 심합니다. 원래 충격적인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게 다반사입니다."
"아, 저는 그냥,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자료만 구하러 온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거든요. 그저, 사고를 당한 후……."
"예, 압니다. 잘 알아요."의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이번에 쓰시는 글이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은 여자의 심리를 다루고 싶다, 그 얘기는 아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정상적인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심리고 뭐고 다 소용 없어요. 선생님이 가시면 보게 되는 건 그저 이 여자 머리가 돌았구나, 하는 것 뿐이지, 전혀 아무 도움도 안될 겁니다."
"예. 그래도 좋습니다. 전 그저 그런 환자의 분위기나 정신상, 그런 것만이라도 알고 싶거든요. 아무래도 실감나는 글을 쓰려면 직접 그런 사람을 만나봐야 하니까요."
"그래도……."
"저, 부탁입니다. 별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 주시면 제 책 머리말을 통해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꼭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음……." 그 말에 의사는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곧 생각에 잠겨들었다.
메디컬 스릴러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그의 구미를 당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좋습니다." 곧 의사는 생각을 정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오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나는 긴 한숨을 조용히 내쉬면서 그를 따라나섰다.
얼굴 전체에 원인 모를 화상을 입은 여자. 화상을 입기 전에는 꽤나 예쁜 얼굴이었다고 했다.
그런 여자가 완전히 얼굴이 뭉그러졌을 때, 도대체 그 심정은 어떨 것일까?
남자인 나로서는, 그리고 그러한 사고를 당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추측만 할 뿐 도저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는 꼭 알아두십시오."
의사가 병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 붙으며 허겁지겁 대꾸했다. "예."
"말씀드렸지만, 그 환자는 정서가 상당히 불안합니다. 아, 그렇다고 뭐, 위험한 사람은 아니란 뜻입니다. 다만 신경이 몹시 날카로우니까, 자극적인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천히 차분하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예, 알았습니다."
"또 한 가지, 아시다시피 그 환자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얼굴이 엉망이 되었으니까요. 따라서 모든 대답은 필답으로 하기 때문에 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한 가지씩만 질문하시고, 대답이 끝나면 다음 질문을 하도록 하세요. 자, 그럼……."
의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나는 긴장을 했다.[계속]
글 박무정
/악몽따라&무진교/하이텔 go sg90
[박무정]
하이텔 아이디:(MirSin)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독립영화단체(2/3) 초대 대표
공포단편집 `살인수업' 출간
하이텔 공포문학 모임 `악몽따라 & 무진교' 창설자
-작품성향:인간심성의 근저에 깔린 사악함과 파괴본능을 주로 다룬다. 심리묘사를 통한 추리소설 풍의 전개와 결말의 파격적인 반전을 즐긴다. 공포소설 이전 SF를 오랜기간 취미로 써와 문체가 다양하다.
-대표작:단편`어둠 속의 키스' 외 다수, 장편 `쥐라기에는 공원이 없다' 외 다수
※알림:
`미즐모'(미스터리를 즐기는 모임)에 이어 이번회부터는 `악몽따라 &무진교'의 여러분들이 `미스터리극장'을 새롭게 꾸며갑니다. `악몽따라…'는 지난 96년 7월 컴퓨터통신내에 `악몽따라 시리즈'를 옴니버스로 엮던 공포-추리 작가들이 하이텔안의 소모임으로 구성, 지금은 정규 회원만 800명이 넘는 PC작가 동호회입니다.
`악몽따라…'에는 유명 작가에서 초보 지망생까지 다양한 계층의 회원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명의 시삽을 비롯해 시리즈물을 연재하는 `왕족', 일정 수준 이상의 작가인 `귀족' , 아마추어 유망주인 `상급 신도', 그리고 90% 이상의 일반 `신도' 등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지난 석달간 본란을 재미나게 이끌어준 `미즐모' 회원들께 감사드리며, 박무정씨의 중편 `미녀의 얼굴'로 시작되는 `악몽따라…'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