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세상] 결식아동 양식이 된 소주값
기사입력 1999년 01월 24일 16시 04분
"소주를 친구 삼아 지냈습니다. 핏 속에 알콜이 도는 동안에는 모든 걸 잊을 수가 있었으니까요."
지난해초 가족을 떠나 서울역을 전전하며 살아 온 김영철씨(47)는 반년이 넘게 깡소주에 기대어 살았다 한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부인과 함께 의류 공장을 했던 김씨는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IMF 한파로 부도가 나면서 가족들과 헤어져 거리로 나 앉게 된 경우.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 죽고 싶은 마음 뿐이더군요. 하지만 나 때문에 고생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소주값은 인력시장에서 벌었다. 한달내 죽치고 있으면 한두번은 일거리가 걸려든다고 한다.
그런 김씨가 올들어 소주양을 확 줄였다.
지난 4일부터 서울 시내 지하철 역무원 보원으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혹한기를 맞아 작년 연말 서울역을 떠나 대방동의 `사랑의전화 24시간 게스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긴 김씨는 요즘 소주값을 아껴 절약한 돈 1천원씩을 매일 그곳 식당에 비치된 결식아동돕기 성금함에 넣고 있다.
"TV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불황이기는 해도 굶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소주 한병 줄이면 배곯는 아이들의 한끼 식사가 해결될 것 같아 이 참에 끊기로 했지요. 자식 새끼들 생각도 나고…."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