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관음증 (1)
기사입력 1999년 01월 24일 16시 04분
규진이와 미영이는 바로 옆 동에 사는 지라 언제나 밤이 되면 많은 이야기를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주고 받았다.
원래 놀이터는 꼬마들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 같은 곳에서 잘 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들 부모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놀이터는 규진이와 미명이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규진이는 오늘 그동안 괴로워 해오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그간의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해결될 듯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
내가 처음 그 집을 보게 된 건 아버지가 내게 천체 망원경을 선물해 주시고 난 며칠 뒤였어.
난 별자리에 관심이 많았어.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고 그 별들이 그들 스스로가 별자리를 만들어 어떤 모양을 나타낸다는 것은 정말 신비감 그 자체였지.
우리집이 14층이잖아.
별자리를 관측하기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였던 것 같아.
그러던 어느날. 그날은 날씨가 흐려서 별자리를 볼 수 없었지.
난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 봤어.
그때 우리 집 바로 앞 동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 잡혔지.
솔직히 그때까진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냥 생각없이 한 행동이었지.
망원경으로 내려다 보면 모든 게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어.
비록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모습들이었지만 그래도 손만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보였지.
그러던 그때 내 시선을 사로 잡은 한 여자를 보았어.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체 상태였지.
그녀의 살결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하얀색이었어.
그녀는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거야.
요즘 뉴스나 신문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거리 있잖아.
엿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그걸 '관음증'이라고 하더군.
난 그 뉴스나 신문을 볼 때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생각했지.
어떻게 사람이 남의 모습을 몰래 훔쳐볼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어. 난 내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했고 자찬했지.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더라고.
그건 지성이고 뭐고 그냥 본능일 뿐이란 걸 몰랐던 거지. 남자란 `족속'들의 본능.
여자들은 가끔 남자에 대해 많이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그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 조차 없는 것 같아.
남자에 대해 경험이 많다고, 남자란 동물에 대해 다 알 수 있는 건 아닌데.
아니 가끔 나도 내 자신이 이렇게 신기 할 때가 많은데.
자기들이 그걸 어떻게 안다고 얘기 할 수 있는지. 모든건 다 '착각'일 뿐인 것을.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 뵈는 모습에 많은 중점을 두지. 그걸 선입견이라고도 하고….
그 사람의 직업이 무언가 또 옷은 어떤 옷을 입었나. 그사람의 학력은 어떠한가….
그런걸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그 사람됨을 결정짓지.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자기 자신만을 돌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을….[계속]
글 남규진[컴퓨터딜러]
/하이텔 미즐모(미스터리를 즐기는 모임) /go sg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