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씨] '황금동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기사입력 1999년 01월 24일 16시 04분
`문화게릴라' 하재봉씨가 장편 멜로소설을 펴냈다. 4년만에 선보인 `황금동굴'(이레). 우물처럼 깊은 사랑의 상처를 아프게 되새기는 작품이다. 때로 돌출행동을 서슴지 않던 그를 떠올리면, 파격적인 변신이다.
그는 원래 꽉 막힌 세상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던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했고, 지금은 케이블TV VJ로 뛰고 있다. 전방위 문화활동가.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그가 전통 서정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황금동굴은 주인공 `나'의 PC통신 ID. `나'는 하씨의 현재 직업처럼 케이블TV VJ다. 은빛 포르셰 카레라를 타고 다니는, 국회의원의 사생아. 밤마다 자유로를 시속 250㎞로 달리는 속도광이다.
`나'는 컴퓨터 대화방에서 돌고래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엔 첫사랑 은방울꽃에 대한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끝내 배신한 여자. `아, 왜 생은 상처투성이일까'.
첼리스트였다가 돌고래 조련사로 변신한 `돌고래'는 헌신적 사랑을 쏟고, `나'는 그게 부담스럽다. 도망치고 싶어한다. 은방울꽃의 그림자 때문이다. 마침내 돌고래가 떠나는 것을 방치해 버리고 만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사랑이란, 사랑의 상처란….
작가는 후기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사랑은 상처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소설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상처받았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상처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세계를 지향한다.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선(禪). 선을 매개로 진정한 사랑의 상처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찾는다. 재즈와 비디오, 록카페 등을 특징으로 하던 하씨의 새로운 작품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양념처럼 전개되는 방송가 뒷얘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임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