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노숙자-고아 돕는 '이방인 천사'
기사입력 1999년 01월 21일 16시 06분
`날개 없는 천사.'
룰라가 히트시킨 노래 제목만이 아니다.
`벽안의 항공기 조종사' 데븐드라 돌라시아씨(45)의 별명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기장으로 서울 르네상스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남자는 지난해 중순부터 IMF 직격탄을 맞은 한국인들을 돕고 있다.
지난해 가을 서대문 사회복지관에 고아와 무의탁 노인에게 전달해 달라며 격려금과 옷가지를 전달한 데 이어 수양부모협회에 프린터와 같은 사무기기를 선물했다. 겨울에는 서울역 노숙자 100명에게 침낭을 사 줬다. 오는 구정에는 인근 고아원생들을 호텔로 불러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일 참이라고.
자선의 필요충분조건은 돈.
"매달 월급에서 500달러를 자동이체시킵니다."
동료 기장 50명이 동참한 덕에 제법 쏠쏠한 돈이 모인다는 고백이다.
이 남자, 지난해 여름 한 영자지를 통해 자녀 등록금이 없어 애태우는 실직자 가족의 사연을 접하고 자선을 시작하게 됐다고.
"등록금을 대 주고 싶다며 사회복지단체에 연락을 했다는 사실이 주위 동료들에게 알려지면서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거죠."
돌라시아씨는 자선을 베푸는데 있어 한가지 원칙을 세워뒀다. 중간에서 샐 가능성이 있는 만큼 가급적 현물을 사 준다는 것. 양질의 물건을 싸게 사는 역할은 르네상스 호텔 직원인 조진연씨(34)가 맡고 있다고 한다.
새해를 맞아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노숙자들을 돕는데 쓴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중. 이를 위해 현재 영어를 잘 하는 가수 박진영씨에게 무료 출연을 섭외중이라고 귀띔한다.
올해로 비행 19년째. 영국, 리비아, 쿠웨이트를 거쳐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일한다.
한국인을 돕고 있지만 IMF 한파에 대처하는 한국인들의 자세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IMF 체재 하에 있다는 걸 벌써 다 잊은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저희 같은 외국인 뿐인 것 같아요."
호주에 부인과 아들, 딸을 두고 있는 그는 또 한국인에게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있는 자는 없는 자를 외면하고, 오히려 없는 자가 없는 자를 돕는 것 같아요."
돌라시아씨는 대한항공과의 계약일인 오는 2001년까지 자선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