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세상] 새 식구가 된 'IMF 고아'
기사입력 1999년 01월 20일 14시 42분
울산시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시설부에 근무하는 유병기씨(50)는 졸지에 고아가 된 아들 친구를 새식구로 맞아들였다.
두달전 아들 원빈이가 친구 박경훈군(18． 신라고 3년)의 딱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당분간 같이 살면 안 되겠느냐"고 조르기에 그날로 할머니가 쓰던 방을 내주었던 것이다.
경훈군의 부모는 재래시장에서 수년동안 이불가게를 하다가 몇달전 IMF 파고를 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길거리로 나앉은 경훈군의 가족은 월세방과 여인숙을 전전하게 됐고 그 사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돈문제로 자주 다투다가 어느날 어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빚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마저 일자리를 찾아 강원도로 떠났다.
경훈군은 아버지로부터 "꼭 보고싶으니 한번 올라오라"는 전갈을 받았고 부랴부랴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경훈군이 도착하기 전날밤 심장마비로 불귀의 객이 돼있었다.
경훈군은 당시의 충격을 못이긴 탓인지 며칠전에는 방에서 갑자기 쓰러져 유씨 가족을 놀라게 했다.
일시적인 정신 불안증세 탓이었다.
유씨는 "IMF로 가정이 파탄됐다는 이야기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같이 지내는 게 이웃의 도리"라고 말했다.
[김동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