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눈(2)
기사입력 1999년 01월 18일 14시 02분
시력을 되찾은 그는 가장 먼저 회사에 취직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이 넉넉히 있어서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놀고 먹을 수는 없는 법. 그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 그는 부유한 가정의 영향으로 과외다 학원이다 많은 부수업을 들었기에 학교 성적이 언제나 최상위였고, 대학 역시 일류대학의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과를 쉽게 패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시절부터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하려고 여러군데 입사 원서를 내봤으나, 빵빵한 간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면접에서 탈락하는 쓰디쓴 경험을 해야만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시력을 되찾자마자 직장과 일을 선택했던 것이다.
어느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는 식사를 하려고 회사에서 나와 근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식당은 회사 건물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었다.
파란 불로 바뀌기만을 바라며 그는 신호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호등의 생김새, 불빛의 색깔…. 모든 것이 새로운 그는 사물과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그는 시선을 신호등에서 떼고는 길 건너편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관찰했다.
그때 그의 눈빛과 마주치게 된 시선이 있었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얼굴은 뭔가 알 수 없는 심통이 가득한 듯 묘한 인상이었다.
그와 눈빛이 마주친 그 할머니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씨익' 하고 웃었다.
사건은 바로 그때 일어났었다.
아직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찻길로 뛰어든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그 할머니의 짓이었다.
그 할머니가 가만히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 여자를 찻길로 밀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다시 한번 그를 보며 '씨익' 하고 웃더니 뒤돌아 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찻길로 떠밀린 여자는 차에 치어 쓰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며,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여자 주위로 몰려왔다.
그 역시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다.
물론 맥박도 뛰지 않고 있었다. '즉사'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보고 소리쳤다.
"이 여자를 밀친 할머니 못보셨어요? 방금 어떤 할머니가 이 여자를 밀었던 거예요. 정말 못보셨어요?"
그때 한 남자가 그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내가 이 아가씨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그냥 뛰어든 거야. 자살하려고 그런것 같은데, 할머니는 무슨 할머니야. 아저씨, 제 정신 맞어?
에휴, 자살하려면 좀더 좋은 방법을 택하지. 하필 왜 교통사고로….
이 여자 친 저 사람 신세도 이젠…. 휴…."
그녀를 친 것처럼 보이는 운전자는 어쩔줄 몰라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할머니를 목격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와 두번이나 눈빛이 마주쳤고, 그 할머니는 그를 보고 웃음까지 지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