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수양대군 역모 맞서는 당당한 여걸
기사입력 1999년 01월 15일 14시 25분
한때 낭랑했던 김혜리(29)의 목소리는 요즘 허스키로 변했다.
KBS 1TV 대하사극 `왕과 비'에서 하도 악을 써댔기 때문이다.
궁중, 남자와 대적하는 유일한 여자 `혜빈 양씨'를 맡은 `업보'다.
"녹화 끝나면 진이 빠져요. 어떤 때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옷 갈아입고 갈 때도 있어요."
일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변성이 아니라, 목소리가 허스키로 아예 굳어져 버렸다고 했다.
`왕과 비'의 혜빈양씨 열연이 장안의 화제다. 이 드라마가 유일하게 KBS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김혜리 덕이다. 눈물쏟은게 한 양동이는 되며, 핸드백속에는 목캔디가 수북하다. `한번도 편하게 진행된 신이 없다'고도 푸념한다.
혜빈은 수양대군 안평 김종서 양녕 등 쟁쟁한 당대의 정치거물과 맞선다. 원래는 인자한 품성의 세종의 후궁일 뿐이었으나, 단종을 친엄마와 다름없이 키우면서 정이 들고, 때문에 단종의 왕위에 집착한다. 종실의 인정을 못받는 후실컴플렉스도 남자들 정치판에 뛰어들게 했다.
일찌기 김종서와 안평과 손잡고 수양의 역모를 꺾으려 했으나 계유정난으로 실패하고 지금은 쫓겨났다.
"`정업원'으로 쫓겨날 때에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눈물이 났어요.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가더라구요."
트레머리 풀리우고, 왕실복까지 벗기우는 장면에서는 연습때부터 울었다고 .
김혜리의 운명은 정해졌다. 홧병으로 각혈하자 단종이 김혜리를 병문안 온 것이 또 수양 눈밖에 나, 그녀는 귀양까지 가게된다.
"민속촌 추위는 10도를 빼야돼요. 바람 불면 나뭇잎 소리까지 나는게 마음까지 추워져요."
속에 잠바도 입고 땀복을 바람막이옷으로 껴입은 덕분에 추위를 견딜 순 있지만, 이젠 한복 겉옷이 안 맞아 걱정이다.
"폐위 신세가 되니까 좋은 점도 있어요. 무거운 트레머리 푸니까 정말 목이 시원해요."
4년전 `조광조'로 사극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김혜리의 서구적 얼굴이 사극에 어울릴까"하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김혜리는 이걸 공연하는 한혜숙 박주아 임동진의 공으로 돌린다.
"선배님들이 `잡아놓고' 가르쳐요. 화를 내면서 챙겨주기까지 하는데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2월말이나 3월쯤 김혜리는 사약을 받는다.
여력이 없어 못했던 현대극을 그다음 해야 할텐데, "요즘 말투, 어떻게 하지?"
연기맛 들인 김혜리는 이제 여유를 보인다.
[이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