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중광] (상) 20년 기행접고 설악품서 칩거
기사입력 1999년 01월 13일 15시 14분
언행이나 성질이 기이한 사람을 기인(奇人)이라 부른다.
순수 그 자체로 살다간 천상병 시인이나 소설가 이외수 같은 사람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누더기에 육두문자－.
97년 늦가을 속세를 등지고 설악산으로 들어간 `걸레스님' 중광(重光．64)이다.
그동안 뭘하고 살았을까.
그의 칩거생활을 상-중-하로 엮어본다.
백담사(百潭寺).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쥐죽은 듯 고요한 1월 8일 해거름.
설악산 자락에 내려깔리기 시작한 땅거미를 훑으며 경내에 들어선 스님 한 분이 오른편 끄트머리 만해기념관 뒤쪽 나무집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너덕너덕 잿빛 누더기에 정수리가 푹 꺼진 군청색 털모자, 세련된 선글라스.
중광스님이다.
세속에 숱한 화제를 뿌려둔 채 재작년 11월 홀연히 사라졌던 바로 그 `땡초'.
소설가 이외수의 춘천집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사람들이 날 보고 두 번씩이나 중이 된 이유를 묻더구만. 도대체들 뭘 몰라. 나는 절을 떠난 적도 없고, 중이 아닌 적도 없었는데 말이야."
숨돌릴 틈도 없이 담배 한 대를 뽑아 문 스님은 선글라스를 벗어 뒤통수쪽으로 바꿔 걸치며 혀를 끌끌 찼다.
79년 서울 종로구 충신동 감로암 법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파격과 기행을 일삼다 조계종으로부터 치탈도첩(치奪度牒) 당한 게 여태 못마땅한 모양이다.
"중질은 내가 해. 조계종 명부에 이름이 오르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야."
스님은 백담사에 들어와 이 절집 최고 어른인 회주스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우선 법호(法號)를 받았다.
농암(聾庵)이다.
귀머거리 절간.
선방이자 화실이고, 화실이자 침실인 지금의 처소며 그림, 도자기 등 작품을 전시하는 농암실(聾庵室)도 다 회주스님이 지어줬다.
스물여섯,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머리깎은 이후 가져보는 최고의 공간.
20년 가까이 세상을 떠돌며 시, 그림, 도자기, 행위예술 등에다 쏟아부었던 혼과 신명을 차근히 정리할 그의 마지막 공간이기도 하다.
벽이며 문이며 온통 나무다.
향긋한 생나무 냄새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힌다.
벽지도 바르지 않은 나무벽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스님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지금은 선시(禪詩)와 선화(禪畵)만 해. 내년에 발표할 생각이야."
선화 중에서도 `달마'만 그린단다.
그새 그림 서른 장 하고, 시 열 편 정도 해놨다.
물론 마음에 드는 놈만이다.
한데 굳이 할딱이며 절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걸레냄새'는 맡을 수 있다.
절마을 어귀 여기저기에 자취들을 남겨둔 까닭이다.
백담가든 벽에는 사람이 개를 타고 있는 듯한 야릇한 그림 한 장을 턱 붙여놨고, 대청식당 벽면에는 사방 돌아가며 낙서로 아예 도배를 해놨다.
`중광 지랄병이 발작했구나!'
`業(업)따라 간다. 法門(법문)은 眞理中 眞理(진리중 진리)이다.'
`우리집 개는 불교를 믿고,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교를 믿고, 우리집 향나무는 유교를 믿고, 우리집 우물은 무당을 믿고, 가갸거겨 가갸거겨.'
스님은 백담사 칩거를 궁금히 여기는 기자를 향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화두(話頭)? 도를 깨친 사람에게는 그런 거 필요없어. 내 생활이 화두고, 선화와 선시가 화두고, 내가 또 화두야. 그건 그렇고, 차 한 잔 할래?" [계속]
[백담사＝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