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9 겹치는해 액운 많다' 출산 미뤄
기사입력 1999년 01월 10일 15시 11분
부부들이 출산을 미루고 있다.
1999년보다는 2000년에 아이를 낳아 새 세기의 주역으로 만들겠다는 게 이유다.
이는 10진수의 끝자리 수인 9라는 숫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도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9년은 액년(厄年).
특히 9자가 겹치는 해는 중대한 고비가 닥치는 관건시각(關鍵時刻)이라 하여 불행하지 않았던 99년이 없었다고.
중국의 경우 1599 누르하치 남침, 1799 백련교 반란에 이어 1899년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 바 있다.
하물며 999년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게 이들의 믿음이다.
일본인들도 `구'(九)의 발음이 `고'(苦)와 같은 `쿠'라는 이유로 9를 불길한 숫자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밀레니엄 버그'도 부부들이 올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유 가운데 하나.
1999년생은 밀레니엄 버그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2000년생은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이라는 것.
올해 태어난 아이는 주민등록번호가 99로 시작되고 내년에 태어나면 00으로 시작돼 1년이라는 세월이 아이들이 앞으로 신-구세대에 대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21세기를 한해 앞둔 2000년에는 유례없는 베이비 붐이 일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말에 결혼한 박영희씨(31．서울 대방동)는 "시댁에서는 빨리 손자를 보여달라며 성화지만 아기에게 세기말의 우울한 세상보다는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희망적인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며 "올 여름까지는 임신을 미루고 내년 가을쯤 `2천년둥이'를 낳겠다"고 말했다.
지난 95년에 결혼, 현재 네살바기 아들을 두고 있는 박호섭씨(35．서울 면목동)도 "아이들의 나이 터울이 너무 커진다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막내만큼은 2천년도에 낳고 싶어 올해말쯤에나 임신을 계획하기로 아내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국의 주요 산부인과에는 올 한해 예년에 비해 임산부들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종암동 하나의원 산부인과는 벌써부터 임산부 환자들이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간호사 이윤희씨는 "지난해 이맘 때보다 20∼30% 줄었다"며 "불황에 세기말 분위기까지 겹친 탓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술학적으로 볼 때 음력 1999년과 2000년의 분기점인 내년 구정(2월 5일) 이후에 자식을 얻는 게 올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
사주팔자에 있어 년(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일(日)과 시(時)이기 때문에 태어날 날짜와 시간만 좋다면 1999년생 가운데 `왕자'가, 2000년 생에서 `거지'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술인 백운비씨는 "흔히 말하는 아홉수는 전혀 근거없는 미신"이라며 "역술학적으로 볼 때 토끼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나 각자 특기를 살려 잘 살아나가는 좋은 운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