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ML산책] ML팬서비스 배워라
기사입력 1998년 05월 22일 14시 51분
보통 1∼2월에 비가 조금 뿌리고는 1년 내내 빗줄기가 그리운 곳이 LA지만 올해는 5월에도 가끔씩 한국의 장마를 연상시키는 폭우가 퍼붓고 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강우로 경기가 취소된 것이 88년 4월21일이 마지막이었고, 특히 5월에 비로 경기를 못한 것은 77년 5월9일이었으니 21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13일의 경기는 미국 프로야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경기 시작은 오후 7시5분 예정이었고, 비는 오전부터 쉬지 않고 내렸지만 오후 5시가 되면서 우산을 쓰고 팬들이 입장했다.
도저히 경기를 치르기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다저스 관계자들은 저녁이면 비가 그치거나 약해질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팬들을 들여 보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실제로 빗줄기가 가늘어졌으나 운동장 정리를 끝내고 이미 예정 시간에서 58분이나 지나서야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는 중간에 두번이나 비로 중단됐다가 결국 자정이 넘은 0시3분에 속개돼 0시36분에 끝났다.
비오는 날의 경기 진행을 지켜보면 우직하게 느껴질 정도인 미국인들의 원칙론과, 팬들과 구단간의 신뢰,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는 국민성을 엿보게된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구단에 경기 진행의 전권이 주어지는데 웬만하면 팬들을 입장시켜 강행을 시킨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주심이 결정권을 갖는데 첫번째 강우로 경기가 중단되면 최소한 1시간15분, 두번째 중단되면 45분을 기다려야 연기를 선언할 수 있다.
이날 경기는 거의 6시간이 지난뒤 끝났지만 그 빗속을 뚫고 입장한 무려 3만2천382명의 팬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혹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쌀쌀한 날씨 속에서 마냥 즐거워했다.
야구가 왜 미국인들에게 삶의 한 부분인지, 그리고 구단들이 얼마나 팬 위주로 운영을 하는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야구장을 가보면 알 수가 있다.[22일 피닉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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