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밀착데이트] 두얼굴 '공포의 외인' 쿨바
기사입력 1998년 05월 20일 15시 03분
105m짜리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 그런 거 안키운다.
1점짜리 아치? 그런 건 시시하다.
개막 한달 동안 여섯방의 홈런을 뿜어낸 사나이.
그의 홈런은 모조리 120m이상을 시원하게 날았고, 3점홈런과 2점홈런 3방씩의 고성능 대포였다.
현대 스코트 쿨바(32)는 시즌의 5분의1이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푸른눈의 슬러거다.
"이제 한국야구를 알 것 같아요."
테크닉과 파워가 적절하게 조화돼있고 일본에 비해 선수층은 얇지만 수준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쿨바가 보는 한국야구다.
그는 아직 한국을 모른다.
인천이 한국에서 네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시라는 사실도 낯설고 서울과 인천 말고는 또렷이 기억하는 지명도 없다.
그가 아는 한국은 한국사람, 더 정확하게는 현대 유니콘스 동료들이다.
"편안합니다. 95∼96년 일본에서 지낼때 보다 친구들 사귀기가 훨씬 좋아요."
팀에서 쿨바는 인기가 좋다.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을 주고받는다.
쿨바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김치는 물론 생선 매운탕, 된장찌개도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처음 맛본 자장면은 최고의 기호식품이 됐다.
일본에서도 생선회와 초밥을 일본 사람처럼 잘 먹었다.
메이저리그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일본을 거쳐 한국땅까지 밟게될 줄은 몰랐을텐데, 가리지않는 식성과 털털한 성품은 하늘이 내린 선물.
쿨바와 아내 수잔은 캠퍼스 커플이다.
수잔이 야구선수였던 그를 먼저 좋아했다는 것이 쿨바측의 주장.
시작이야 어찌됐든 오늘의 쿨바는 동료들에게 공처가로 찍혀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 남자들의 오해.
찬찬히 살펴본 쿨바는 `아내를 존중하는 자상한 미국남편'이다.
그는 설겆이를 하지 않고 청소를 도와주는 일도 드물다.
다만 모든 결정에 아내의 의견을 우선으로 듣고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을 나눠맡는다.
쿨바의 6살 손아래 동생 마이크 역시 야구선수.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록키스의 트리플A팀에서 3루수로 뛰고 있다.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벌써 두자릿수 홈런을 쳐내고 있는 슬러거다.
쿨바와 마이크는 시즌마다 홈런수를 겨뤄왔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서 13시즌, 일본에서 두시즌을 뛴 쿨바가 이제 스물 여섯의 동생보다 늘 홈런수가 많았다.
"예전에는 넉넉히 따돌렸는데 점점 마이크의 홈런이 늘어요. 둘다 시즌 30홈런을 때리지 못했는데 올해는 함께 힘좀 써보기로 했습니다."
쿨바의 모자에는 타일러와 챈들러, 두 아이의 이름이 함께 적혀있다.
그 밑에 쓰여진 글귀가 뜻밖이다.
"Be Agressive! No Fear!(두려워 말고 공격적으로 맞서라.)"
타석은 그에게도 역시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전쟁터인 모양.
열여덟명이 얽혀 뛰어도, 결국은 나약해지기 쉬운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 야구다.
[이승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