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관객 상상뒤엎는 '공포의 파티'
기사입력 1998년 05월 20일 14시 20분
폭우가 퍼붓는 어느날 밤, 미모의 범죄심리학자가 음산한 정신병원을 찾아온다. 면도칼로 자그만치 17명의 목을 잔인하게 베어 죽인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의 면담을 위해서다.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연쇄살인범은 차가운 블루톤의 면담실에 고개를 숙인채 앉아있고, 범죄심리학자는 살인광기에 사로잡힌 그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부천 국제환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낳았던 `어글리'(The Ugly)는 이렇게 공포영화의 분위기를 잡는다.
폐쇄된 공간에 마주앉은 두 남녀. 이런 설정은 많은 영화를 통해 이미 익숙해 있는 상황. 한쪽은 집요하게 묻고, 또 한쪽은 괴로움에 몸을 떨면서 고백하고. 그러다가 동정과 연민, 이해의 과정을 지나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거나 그도 아니면 또다른 살인으로 끝을 맺는 식의.
그러나 `어글리'는 이런 익숙한 상황과 상식적인 드라마를 비켜간다. 1시간35분동안 두 남녀의 면담을 축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시공간을 어지럽게 넘나들면서 수시로 관객의 상상을 배반한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연쇄살인범 사이먼(파올로 로탄도)은 드디어 범죄심리학자 카렌(레베카 홉스)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공포도 함께 시작된다.
이혼으로 조울증에 걸린 어머니의 정신적인 학대에 시달리다 어머니를 살해하게 됐으며, 이후 아무런 이유없이 무려 17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제 겨우 스물여덟살인 스코트 레이놀즈 감독은 첫번째 영화이면서도 드라마에 연연해하지 않는 배짱을 보여준다.
"공포에 떨며 소리치는 관객의 모습을 즐긴다"는 감독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공포심리'를 표출해내는 데만 집착한다. 현실과 환영의 교차, 현재와 과거, 또는 원인과 결과의 병치 등으로 관객을 숨돌릴 틈 없이 `공포의 파티'로 몰아넣는다.
복수심과 파괴심으로 가득찬 사이먼의 광기도 섬뜩하기 짝이 없다. 면도날로 목을 베거나 눈알을 도려내고, 목을 후벼파 식도를 끄집내기도 한다.
당연히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야 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피는 모두 콜타르처럼 검은 빛이다. 살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살인본능을 유혹하는 색감으로 작용한다.
살인행위 그 자체보다도 악령의 환영에 사로잡힌 사이먼의 예측할 수 없는 심리묘사로 공포를 이끌어내는 `계산된 연출'이 돋보인다.(30일 시네코아)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