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하늘나라 내 아들이 응원할겁니다'
기사입력 1998년 05월 19일 13시 59분
"재형이는 하늘나라에서도 한국축구를 응원할 것입니다. 영광의 그날까지 건투를 빕니다."
19일 오전 서울 타워호텔.
비명에 간 막내아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아버지가 대신 쓴 한통의 편지가 월드컵축구 국가대표팀에 전달됐다.
편지를 띄운 사람은 경기도 오산시에 사는 이성희씨（49．건축업）.
축구를 무척 좋아했던 이씨의 아들 재형이는 중학교 3학년인 지난해 12월 급우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뇌사상태로 고생하다 숨을 거뒀다.
"재형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축구중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할때 펄쩍펄쩍 뛰며 만세를 부르곤 했답니다."
편지는 재형이가 늘 축구공을 끼고 살았고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을 넘어 8강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차범근 감독은 물론이고 최용수 서정원 선수는 재형이의 우상이었습니다. 최용수 선수가 골을 넣으면 `용수형 멋쟁이'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곤 했지요."
이씨는 또 "생전에 재형이의 소원이 대표선수들을 만나보는 것이었다"며 "편지라도 보내겠다고 여러차례 말했었는데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씨는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에게 "빨리 일어나 월드컵 봐야지. 용수 형이 골 넣도록 응원해야지"라면서 귀에 대고 이야기하면 재형이는 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월드컵 개막일이 점점 다가오자 아들이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대신 편지를 쓴 것이다.
이 편지를 받아본 차범근 감독과 최용수 서정원 등 대표선수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라면서 "재형이의 혼을 달래 주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16강에 진출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되새겼다.
[신향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