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85) 첫의치
기사입력 1998년 05월 18일 15시 00분
얼굴이 예쁘고 몸이 아름다워도 이(齒)가 희고 가지런해야 미인이다. 삼백미인(三白美人)이니 칠백미인(七白美人)이니 하는 우리나라 전래의 미인 요건 중에는 흰 얼굴, 흰 손 등과 더불어 반드시 흰 이가 필수적이었다.
서양역사를 보면 미인들이 가지런한 흰 이를 갖기 위해 무진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흉하거나 변색한 이는 의치(義齒)로 해결했다.
처음으로 의치를 사용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부자들이었다. 그들은 뼈로 만든 인공치아를 어금니에 고정시키기 위해 금줄을 사용했다.
로마시대에도 나무 따위로 만든 의치가 있었다. 로마의 작가 마르티알루스는 나무 의치에 대해 `막시무스는 세 개의 의치를 했는데 이는 모두 회양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검은색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로부터 1천수백년 동안 서양에서 의치 제작기술은 발전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찰스 앨런이라는 사람은 1685년 `치아를 다루는 사람'이란 책을 썼다. 그는 책에 "충치를 뺀 자리에 다른 사람의 건강한 이를 박아넣는 새로운 이식방법을 개탄한다"며 "차라리 양이나 개의 이빨을 이식하는게 좋다"고 주장했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동물의 이로 사람의 의치를 만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1846년 한 치과의사는 의치를 두고 `단순히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치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의치는 입 안에서 너무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에 의치로 음식을 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인이 되고싶어하는 여인들은 여전히 의치를 즐겨 사용했다.
18세기 말이 되면서 치과의사 가운데는 의치를 팔아 한몫 챙기려는 풍조도 나타났다. 토머스 버드모어라는 치과의사는 의치를 팔려고 `빠지거나 썩어서 거뭇거뭇한 이나, 움푹 꺼진 입술이 밝은 표정을 구겨버린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 말을 들은 여인들은 깜짝 놀라 치과의사들에게 달려갔다.
빅토리아 시대의 숙녀들은 여벌의 의치가 없으면 남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툭하면 의치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18세기 말이 되면서 의치는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여전히 음식을 씹을 때면 뺨으로 조절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의치가 미끄러져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똑똑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려고 식사중에 의치를 포도주에 담가놓았다가 사용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지하 납골당과 전쟁터의 시체들에서 치아를 빼와 의치로 만들기도 했다.
20일 제7회 건치가족 선발대회가 서울대 치과대학병원 구강진단과에서 열린다. 서울시치과의사협회가 실시하는 행사다. 의치가족 선발대회가 아닌게 다행이다. 치의학이 계속 발전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