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사투(8)

기사입력 1998년 05월 18일 14시 22분


"위치가 어디야?"

이준석이 묻자 노튼은 정색을 했다.

"살룸 근처의 해안도로야. 대위."

그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의 한쪽을 볼펜으로 눌렀다.

"이곳에서 여자한테서 연락이 왔어. 지금 5함대까지 동원되고 있네."

핏발선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던 이준석이 머리를 들었다.

"노튼 워렌의 목표는 K-7 장치이겠지?"

"물론이지. 대위."

노튼의 회색 눈동자가 이준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의 약혼자도 무사히 구해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불안하게 생각하지 마라. 대위."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믿는 수 밖에 도리가 없지않나?"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보았고 거의 동시에 시선을 떼었다.

카이로 외곽지역에 있는 CIA지부 사무실이다. 노튼은 30대 중반쯤으로 체격이 큰 행정요원이다.

그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대위, 핵잠수함 리버풀에서 차출된 15명의 특공요원이 현장으로 떠났어. 아마 30분쯤 후에는 콘테이너 트럭에 닿을거야."

그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위성전송 사진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마 저 콘테이너 안에 당신 약혼자가 타고 있을거야."

사진은 선명했다. 콘테이너 트럭의 번호판까지 찍혀졌고 그 뒤쪽으로 네대의 승용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위, 한잔 하겠나?"

어느새 서랍에서 위스키병을 꺼낸 노튼이 그를 바라보았다.

"한잔 마시면 긴장이 가라앉을텐데."

"고맙지만 싫어."

"당신 약혼자, 용기가 대단해. 계속해서 우리한테 결정적인 정보를 주는구만."

"용기있는 여자가 아냐. 노튼."

어깨를 내려뜨린 이준석이 초점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겁이 많고 참을성이 부족했어. 섬세한데다 의지가 약한 성격이란 말이다."

벌컥이며 두 모금을 삼킨 노튼이 위스키 병을 내려놓았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닥쳐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어. 대위 네 여자는 강해."

"빌어먹을."

마침내 이준석이 위스키병을 움켜쥐었다. 그는 병을 기울여 위스키를 세 모금이나 삼키고는 입가를 손등으로 씻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우선 기뻤지. 춤이라도 추고 싶었고 하느님은 물론이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가 핏발이 선데다 흐린 눈으로 노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커진다. 이제는 그녀의 자취가 나타날 적 마다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노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대위."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 일과 비슷한 경우를 보았어."

"…."

"납치당한 아내를 필사적으로 찾고난 남편이 얼마 가지않아 이혼을 하더구만."

"난 그러진 않아. 노튼."

다시 위스키병을 쥔 이준석이 입술 끝만으로 웃었다.

"절대로. 하지만 하마니는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을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