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씨] 원고지에 토해낸 '질곡의 삶'
기사입력 1998년 05월 17일 15시 09분
쉰셋이 되면서 비로소 `이혼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자－박정원. 스물셋에 여자를 버리고 어머니로만 살았던, 가슴저미는 세월.
"서른해 동안 쌓인, 한（恨）과 슬픔의 노래는 이젠 마감하고 싶다. `창살없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자전적 소설을 썼다. 이젠, 난 정말, 훨훨 날고 싶다."
박정원은 불과 보름새 2백자 원고지 2천매를 메꿨다. `신들린 여자'였다. 그러나 수없이 망설인 끝에 소설@`당신의 사랑을 갚아 가게 하소서'를 최근에 냈다. 출판사 `창해'에 원고를 넘기면서, 단 한자도 못고치게 했다.
"살면서 너무 부대낄때, 수없이, 내일은 해가 안 떴으면 싶었다. 두아들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다. 지금도 침대에 웅크리고 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르고 살았다."
박정원. 경남 창녕 태생. 정미소와 양조장을 하던 집안의 딸. 유년기의 꿈은 발레리나. 마산제일여고 졸. 연세대 국문과중퇴. 서라벌예대 무용과 졸업.
그러나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 끝없는 좌절과 방황. 그 카오스에서 11살 위의, 전라도 만석꾼의 막내아들과 결혼.
"미국유학도 시켜주고, 무용도 계속하게 해준다는 통에, 그만 결혼을 덜컥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무용연구소와 대학 캠퍼스만 꿰도열차처럼 오갔다. 묶은 긴머리. 흰 플래어 원피스. 1m63cm, 48kg. 단아한 몸매. 서글서글하고 서늘한 큰눈과 날선 코.
뭔가 뭔지도 모르는 새, 두아들까지 낳았다. 발레리나는 한갖 신기루. 게다가, 남편에겐 이미 아들까지 딸린 다른여자가 있었다.
"다른여자는, 어이없게도 남편의 친척집 누나였다. 남편의 거듭된 사업실패, 여기다 간단없이 쏟아지는 매질로...벼랑끝에 서 있었다."
두아들을 데리고 남편몰래 떠났다. 서울 변두리. 10평짜리 가게를 얻어 설렁탕 장사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 파김치의 연속이었다. 신통하게 손님이 많았다. 그런대로 안정이 될때 빚투성이의 남편이 찾아와 또 다시 고통을 준다.
"남편에게, 채권자들을 속이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건 남편과의 영원한 결별을 위한 수순이었다. 남편의 빚을 모두 떠안았다."
이혼. 박정원은 이미 서른 셋.
설렁탕 장사를 그만두고 홍릉 과학단지 내의 커피숍 `맥심'을 운영. 이로부터 사업운이 트인다. 동숭동의 국내 최초 맴버스클럽, 프레스 센터 내의 마로니에 커피숍 등 손대는 것 마다 잘됐다.
정,관,재계의 인사들과 교류가 이뤄지고, 유명세까지 붙는다.
그토록 사랑했던 두아들（30, 28세）은 외국유학까지 마쳤다. 그런데도, 박정원은 하루에도 수없이 `허무에 바다'에 빠진다.
"살면서, 몇번씩 죽다가 살아 났다. 이 세상엔, 대충대충해선 되는 게 없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저 그랬다."
[서병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