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자격증 하나없는 '자격증 박사'
기사입력 1998년 05월 15일 16시 21분
요새 브라운관을 통해 `뜬' 사람들이 참 많다.
황수관 박사, 고승덕 변호사, `그냥 주부' 안문현….
시들한 연예인들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다.
그런데 이들 말고도 새롭게 떠오르는 별이 또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구본재 검정국장（51）.
국내에서 치러지는 737가지 각종 국가기술자격시험을 관장하는 부서의 총책임자다.
얄궂은 대구 사투리에 무덤덤한 표정의 `이웃집 아저씨' 구국장은 IMF시대를 맞아 취업난과 대량실업사태가 겹치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자격증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덩달아 방송출연도 잦아졌다.
지난달엔 KBS 2TV `고승덕_김미화의 경제연구소'에 나가 김미화와 얘기를 나눴고, 지난 14일 아침에는 KBS 2TV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에 나가 왕종근 아나운서와 대면을 했다.
"불행히도 저는 나라경제가 엉망일 때만 주가가 오릅니다. 80년대 초반 석유파동 때도 자격증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눈만 뜨면 방송출연을 했죠."
지난 77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전신인 한국기술검정공단에 공채 1기로 입사한 구국장은 올해로 자격증 검정업무를 다룬 지 22년째다.
그를 거쳐간 응시자만도 연인원 2천811만명.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63％에 이르는 엄청난 수치다.
"작년엔 연인원 228만명이 각종 시험을 봤는데 올해는 20％가 더 늘었습니다."
자격시험이 대부분 일요일에 치러지다 보니 구국장에게는 휴일이 없다.
주위의 경조사에 늘상 빠지다 보니 친구도 없다.
어쩌다 몇 안남은 친구들과 자리를 해도 "나도 자격증이나 하나 달라", "넌 자격증 많아 좋겠다" 등의 심통맞은 빈정거림을 받기 일쑤다.
지금까지 연인원 516만명의 자격증 취득자를 배출한 국내 최고의 `자격증 박사' 구국장.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자격증이 단 한개도 없다.
그가 가진 `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 전부다.
"시험의 투명성 때문에 직원들은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안받으니 오히려 속 편하죠."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