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강만우 8단●조훈현 9단
기사입력 1998년 05월 14일 15시 16분
총보（1∼131）＝요즘 비록 제자 이창호 9단에 맥을 못추고 있는 조훈현 9단이지만 여전히 도전권의 `파수꾼'으로 타기사들에겐 넘어야할 큰 벽이 아닐 수 없다. 조 9단과 대국해본 기사들은 승패를 떠나 한결같이 그의 불가사의한 힘에 혀를 내두른다.
그에게 몇번 이겨본적이 있는 기사들 조차 "한판 이겨가기가 이렇게 힘든 지 몰랐다"며 다시는 상대하기 싫은 상대로 조 9단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불리할 경우 조 9단의 `흔들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웬만한 기사들은 그 흔들기에 주눅이 들어 스스로 무너지기가 일쑤. 한마디로 호락호락 져주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상대를 제압할 경우엔 누구보다 알기쉽게 판을 마무리해가는 조 9단이다. 그와 대국해본 모 기사는 "한판의 바둑을 두면서 내가 두고 싶은 곳을 한번도 못두고 지기는 처음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만큼 상대를 압도하는 대세감각과 현란하고도 빠른 발을 갖고 있는 조 9단이다. `몇수 뚜닥뚜닥 응수하다 보니 어느새 둘 곳도 없이 져있더라'던 모 기사의 반농담조의 말이 그와 대국해본 기사라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판은 비록 단명기로 막을 내렸지만 초반 강 8단의 의욕은 돋보였다. 단 백 22로 끊은 점이 약간 성급해 37까지 결과는 백으로서 아쉬웠다. 그냥 백 24, 26으로 젖혀잇고 흑 22로 보강할 때 백 `가'로 뛰어나왔으면 백이 활발했던 국면.
백으로서 결정적 문제의 한수는 50으로 치받은 수. 이 수로 59에 씌워갔으면 어떻게 변화했어도 백이 편했다. 51∼61까지 백은 흑이 하자는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 크게 당했다.
백은 여기서 페이스를 잃고 62, 64로 가치가 적은 하변에 계속 돌을 투자해 판을 그르치고 만다. 지금이라도 냉정을 되찾아 백 `나'로 좌변을 지켰으면 긴 바둑이었던 것.
79에서 시작된 흑의 파생공격은 백의 항서를 받아내기에 충분했다. 돌풍을 기대했던 강 8단으로선 아직 캐리어 부족을 절실히 실감했을 터. 이로서 조 9단은 본선 8강에 올라 강훈 9단과 겨루게 됐다. 131수 끝, 흑 불계승. 33＝22의 자리.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