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사투(5)
기사입력 1998년 05월 14일 15시 16분
하마니가 운전석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면서 힐끗 오경미를 바라보았다.
"한숨 자고있어."
한 낮이어서 렬려진 문틈으로 운전석 앞쪽의 환한 세상이 보였다. 오경미는 침대끝에 앉아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이틀간을 트럭안에만 갇혀 있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불안했던 것이다.
하마니는 수시로 밖과 교신을 했는데 아랍어여서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쫓기고 있었다.
애써 그녀에게는 태연한척 했지만 그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오경미는 콘테이너 벽에 뚫린 조그만 창문을 안쪽에서 열었다.
그러자 짙은 남빛의 바다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하늘이 연한 회색이어서 수평선이 뚜렷했고 배도 한척 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 끝쪽에 사내 두명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마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세워진 철제 이정표에는 살룸이라는 아랍어와 영어가 써져 있었고 우측을 가리키는 화살표 밑에 10㎞라고 표시되었다.
창문을 닫은 오경미는 구석에 놓여진 무전기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들고 스위치를 켰다.
하마니의 옆에서 그가 무전기를 작동하는 것을 보아온 것이다.
곧 잡음이 들리더니 아랍어로 묻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그녀는 서둘러 채널 스위치를 틀었다.
주파수를 맞춰 놓은 부하들이 응답한 것이다. 다시 잡음이 들리더니 엔진 소리와 함께 아랍어가 들렸다.
오경미는 무전기를 입에 대었다.
"헬로?"
그러자 상대방이 놀란듯 영어로 답했다.
"헬로, 거긴 누굽니까?"
"실례지만 거긴 누구지요?"
"여긴 이집트 해군 초계정 AE 207호입니다. 당신은 누구요?"
"전 납치당한 한국여자 오경미입니다. 지금 트럭의 콘테이너 안에 있는데 납치한 사람은 하마니입니다."
단숨에 쏟아붓듯 말한 오경미가 서둘러 말했다.
"지금 제 위치는 살롬 왼쪽 10㎞ 지점의 길가에요. 트럭 안에 있습니다. 구해주세요."
"여보세요."
오경미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끄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다시 무전기의 주파수를 원래 위치 15로 돌려 놓았지만 그것이 15인지 25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침대에 걸터 앉았을때 문이 열리더니 하마니가 들어섰다.
"왜? 누워있지 않구?"
다가와 옆에 앉은 그에게서 바다의 비리고 짠 냄새가 맡아졌다. 그가 팔을 둘러 오경미의 어깨를 안았다.
"국경에 문제가 있어서 이곳에서 여섯시간쯤 기다려야겠어."
그가 손을 뻗쳐 오경미의 치마 속을 더듬었다.
"이것봐. 온 몸이 땀으로 끈적이는군 그래."
그가 욕정이 솟은듯 두 눈이 번들거렸다.
"시간은 충분하겠다. 어때?"
결코 오경미의 의향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치마를 겉어 올렸고 팬티를 끌어 내렸다.
오경미가 그의 손길을 따라 순순히 침대에 눕자 하마니는 만족한듯 웃었다.
"너도 꽤 밝히는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