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사투(4)

기사입력 1998년 05월 13일 14시 28분


워렌이 상기된 얼굴로 번역된 내용을 읽었다.

"나는 한국여자 오경미입니다. 룩소르에서 버스 폭발사고가 난 후로 지금까지 잡혀 있습니다. 이름이 하마니라는 아랍인이 이끄는 20여명의 사당입니다. 하마니는 이번 일이 끝나면 알제리의 바닷가 별장으로 나를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이 쪽지를 주으신 분은 즉시 한국대사관에 신고하여 주십시오. 무서워서 영어로 쓰지 못했습니다. 신의 가호로 이 쪽지가 발견되어 전달되기를 빕니다. 오경미. 1998년 7월 23일 오후 4시."

머리를 든 워렌이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대위, 오경미씨 필적이 맞지요?"

이준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오경미가 남긴 쪽지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알제리의 해안가에 하마니의 별장이 있는것 같다."

워렌이 방안에 모인 요원들을 향해 말했다.

"7월 23일에 쓴 것이니 바로 사흘 전이야. 총격전이 일어나기 이틀전이다."

그가 끝쪽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스티븐, 네가 알제리로 가라."

"저도 가겠습니다."

번쩍 머리를 든 이준석이 말하자 워렌이 머리를 저었다.

"대위, 놈이 알제리로 간다면 그땐 확실하게 잡을 수가 있소. 하지만 지금은 안왔을거요."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습니까?"

소리치듯 이준석이 묻자 워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드 때문이오. 대위, 이미 노출된 당신이 이집트를 나간다면 사드가 알아챌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알제리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사드를 잡은 후에."

워렌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당신 약혼자 덕택으로 우리가 이번에는 사드보다 한걸음 앞선것 같소. 그리고 그 놈은 하마니를 아직 찾지 못했소."

그가 주위의 요원들을 둘러보았다.

"리비아 정보국의 마호메드 대령이 리비아에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어. 하마니가 접촉한 인물은 마호메드다."

상체를 세운 그가 소리치듯 말했다.

"샅샅이 뒤져서 하마니와 마호메드를 찾아. 그리고."

사드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요원들이 서둘러 방을 나갔으나 이준석은 남았다.

워렌이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대위, 우리한테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만이 약혼자를 찾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 여자는 강합니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이준석이 시선을 돌렸다.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내가 장담할 수 있어요."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워렌이 선반에서 위스키병을 집더니 잔 두개에 따라 들고 다가왔다."

"대위, 한잔 하시오."

워렌은 선채로 크게 한 모금을 삼켰다.

"대위, 하마니가 짐만 되는 당신의 약혼자를 알제리까지 데려가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준석이 퍼뜩 시선을 들었으나 워렌의 옆모습만 보았다.

다시 한 모금을 삼킨 워렌이 말을 이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위, 이것은 경험자로서의 내 충고요."

"살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시선을 내린 이준석이 이 사이로 말했다.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겠소. 절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