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19)'배우면 남 속인다'
기사입력 1998년 05월 13일 14시 28분
바두이족 원주민들은 `자급자족'을 신앙처럼 지킨다.
한때는 열대 우림에 풍부하게 널려 있는 과일이나 열매를 먹고 살았으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벼농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바두이 지역엔 학교도 없다. 순박한 그들은 학문을 익히고 지식을 얻으면 약아져서 남을 속이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국어를 전혀 모른다. 자기들끼리만 순다어를 쓰기 때문이다.
바두이족은 흑 바두이와 백 바두이 두 부족으로 갈라져 살고 있다.
흑 바두이 사람들은 검은 옷, 백 바두이 사람들은 흰옷만 고집해 입으면서 서로를 구분한다.
흑 바두이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다소 개방적이나, 백 바두이 사람들은 밀림의 `성골'처럼 오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같은 종교와 전통과 관습을 지닌 바두이족들이 함께 모여 살다가 갈라진 이유는 전통을 지키는 방법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외부인과 접촉을 철저히 배척하자고 주장한 `수구파'들은 더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가 백바두이 마을을 이뤘다는 것이다.
필자 일행이 찾아간 곳은 흑 바두이 마을이었다.
백 바두이 마을은 흑바두이 마을에서 정글을 헤치고 다섯 시간쯤 더 걸어들어가야 나오지만, 외부인의 접근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 지역에 잠입해 어떤 사고를 당하더라도 책임질 수 없다고 인도네시아 경찰들이 겁주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흑 바두이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경찰서에서 발급해준 방문 허가서를 제출하고 약간의 기부금을 낸 다음 방명록에 서명했다. 한국인의 방문은 우리 일행이 처음이었다.
사진 촬영 허가를 받아놨지만, 좀처럼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흑 바두이 사람들 역시 외부인이 접근해 사진을 찍으려들면 사나운 폭도로 돌변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길다란 칼을 옆구리에 차고 있어서 더욱 두려웠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의외로 순진했다.
옆구리에 차는 긴 칼은 `무기'가 아니라 농사를 짓거나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데 필요한 `도구'라는 것이었다.
흑 바두이 사람들 역시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명 세계의 생활 용품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야자나 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사용했고, 날이 저물어도 불을 밝히지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가까운 도시의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필요한 물건들을 돈을 주고 사거나 물물교환으로 구입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자급자족'의 전통을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흑 바두이 사람들은 외부인이 오면 머무는 촌장 집에만 문명 세계의 생활용품 사용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지만, 현대 문명의 물결을 거부하는 데 한계가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천연 재료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고 손수 실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던 바두이족도 이젠 문명 세계와 타협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른다.[다음은 수마트라섬에 사는 바탁족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흑 바두이족의 전통 공연은 `동네 군악대'처럼 지나치게 소박하다.
흑바두이 마을의 원시 목욕탕. 화장실은 아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