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설레는 북송길 '제2 이산 슬픔'
기사입력 1998년 05월 12일 15시 15분
충남 서산시에서 차를 타고 부석을 향해 20여분 달리다 보면 광활한 대지와 호수를 만난다.
현대건설에서 지난 95년 완공한 4천660만평의 서산영농사업소.
정문을 지나 5분쯤 들어 가면 100만평의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무리의 소떼를 만난다.
`북으로 가는 소'.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한우 1천마리를 몰고 북한에 가겠다고 밝힌 이후 온 국민의 화제가 되고 있는 `북송우（北送牛）' 목장이다.
현재 이곳에서 사육중인 소는 2천700여마리.
지난 4일 서산영농측에선 이번 `왕회장님의 귀향길'에 동행할 소를 1차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비육우와 `거세' 황소 등 500마리로 선정했다.
생후 10개월에서 60개월까지 다 큰 소들을 우선 뽑았다.
그리고 지난 11일 검역과 예방주사도 맞혔다.
암소중에는 새끼를 밴 것도 있다.
4년 동안 이들을 돌봐온 사육사 김효수씨（37）는 "판문점을 넘어서면 이들의 운명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코뚜레를 하지않아 논두렁이나 제대로 엎을는지 아니면 노동당 간부나 군대의 식탁에 오를 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11일 밤 12시엔 이곳 소 4마리를 실은 5톤 트럭이 판문점까지 다녀 왔다.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운반상의 문제와 코스, 시간등을 미리 체크하는 예행연습을 한 것.
지난 94년 한우 송아지 10마리로 시작한 이곳 목장은 인공수정으로 품종을 개량해온 터라 모두가 한핏줄이다.
그래서 얼굴도 닮았다. `친척'아니면 형제, 자매, 부모자식간이다.
`북으로 가는 소'들에게는 또다른 `이산의 아픔'인 셈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지난 7일 서산영농사업소를 방문해 `북으로 가는 소'를 직접 봤단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6·25직후 단신 남하한 김명훈씨（65·서울 강서구 등촌동）는 "50년이 지나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내 신세에 비해 소들이 훨씬 낫다"며 `북송소'를 부러워했다.
9칸의 축사엔 `북송 소' 50여마리씩 나뉘어 `합숙'을 하고 있다.
검역과 예방주사를 맞은 탓에 다른 소들과 섞일 우려가 있어 초원에 나가지도 못한다.
북송일이 초읽기에 들어간 12일 서산 축사엔 찬비가 내리고 있다.
[서산=이기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