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사투(3)
기사입력 1998년 05월 12일 15시 15분
이미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어서 해안을 때리는 흰 파도끝만 보인다.
오경미는 한 뼘 밖에 안되는 창문을 안쪽에서 닫았다. 창문이라기보다 밖을 내다보는 감시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될것이다.
컨테이너 안을 개조해서 바깥쪽 반은 짐칸이었고 안쪽에 의자와 간이 침대를 놓았는데 겉에서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지루한가보군."
자는 줄만 알았던 하마니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옆에 붙여진 스탠드의 불빛을 받아 그의 얼굴이 반쪽만 보였다.
"앞으로 여덟시간은 더 가야 시디바리니에 도착한다. 그러니 잠을 자둬."
그가 눈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이리와."
오경미가 다가가자 그는 팔을 벌려 허리를 안았다.
"넌 언제봐도 새롭고 아름답다."
차도르가 젖혀 올라갔으므로 오경미의 알몸인 하반신이 드러났다.
하마니가 욕정이 솟은 눈으로 그녀의 하반신을 쏘아보았다.
"침대에 누워라."
"오늘은 싫어요."
차도르를 끌어 내리며 그녀가 말하자 하마니가 놀란듯 눈을 치켜 떴으나 입은 벌리고 웃었다.
"거부하는 거냐?"
"여기서는 싫습니다."
그 순간 손을 휘두른 하마니가 오경미의 뺨을 쳤다.
오경미가 침대의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히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넌 선택권이 없다고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단 말이냐！"
일어선 하마니가 바지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오경미를 잡아 일으켜 침대위로 내동댕이쳤다.
그 시간에 CIA요원 지미 존슨은 알렉산드리아 해안가의 별장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말이 수색이지 건들거리며 돌아 다니는 중이었는데, 별장안에는 지문하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할 자식들. 철저하군그래."
역시 비슷한 표정의 동료를 지나치면서 존슨이 투덜거렸다. 별장이 하마니의 은거지였다는 것도 불확실했다.
총격전이 일어났던 별장과는 1㎞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사드가 먼저 이곳에 왔을 가능성도 있다.
어지럽게 찍혀진 구둣발 자국이 집안의 곳곳에 박혀 있었고 가구 일부는 부서지고 깨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안을 온통 뒤져봐도 단서가 될만한 증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뒤쪽의 방으로 들어선 존슨은 벽에 붙여진 침대에 앉아 지친 몸을 풀었다.
방안에는 달랑 침대 하나만 놓여졌고 창문도 없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하품을 한 그는 벌렁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는 무심코 머리를 돌렸다가 바스락 소리에 몸을 굳혔다.
다음 순간 튕기듯이 일어난 그는 베개를 집어들고 겉을 씌운 시트를 뜯어 벗겼다.
그러자 손바닥만한 메모지 한장이 떨어졌다. 눈에 불을 켠듯한 표정으로 종이를 집어든 그는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영어도 아랍어도 아니다. 각진 글자체였고 정연한 배열이었다.
그때 문득 그는 LA의 코리아타운에서 이런 글자를 본 기억이 났다.
종이를 움켜쥔 그는 한걸음에 방을 뛰쳐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