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18)문명 거부한 옹고집 마을
기사입력 1998년 05월 12일 15시 15분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곳에서만 살아왔던 소녀가 그 멀고 낯선 길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표준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 복잡한 대도시에서 어떻게 친지를 만났을까?
수수께끼 같은 소녀 이옐의 이야기는 필자가 바두이마을을 찾아갔을 때 일어났던 `실제 상황'이었다.
바두이족은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불과 2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5천여명의 바두이족들은 문명세계와 담을 쌓고 은거하듯이 지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김도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다.
`잊혀진 소수부족'인 바두이족은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유난스레 꺼린다.
깊은 열대 우림에서 야자와 벼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그들은 선조들의 삶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바두이족은 서부 지바에 살고 있는 다른 종족들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바두이족들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과 천리안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무시무시한 호랑이들이 바두이 마을을 지켜 준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우월감 때문일까? 바두이족의 뿌리깊은 옹고집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자바 지역 대부분이 회교권이지만 이들은 힌두교 성향이 짙은 자신들만의 종교를 고집한다.
바두이족은 바타라 퉁갈(Batara Tunggal)이란 유일신을 모신다. 고대 자바 원주민들의 우주철학과 힌두교와 불교의 성격이 혼재된 신이다.
약 800년 전 회교도들이 자바 전역을 휩쓸었을 때도 그들은 꿋꿋하게 그들의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바두이족은 지금 흑바두이(외부)와 백바두이(내부) 두 부족으로 나눠 살고 있다. 흑바두이족은 검은 색 옷, 백바두이족은 흰색 옷만 고집해 서로를 구분한다.
흑바두이족의 경우 남자들은 상의 바지 혁띠 두건 등을 검은 색으로 통일해야 하며, 여자들도 검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
유리나 플라스틱 등 문명의 생활용품을 거부하는(?) 그들은 야자나 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쓰고, 날이 저물면 불을 밝히지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잠들어버린다.
현대문명과 동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인근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필요한 물건들을 돈 주고 사거나 물물교환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바두이족은 조상 대대로 이어 온 관습에 따라 자연에 파묻혀 살기를 원한다. 문명의 이기를 철저히 배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두이족 주민들은 `긴 것은 맘대로 줄이지 못하고, 짧은 것은 맘대로 늘이지 못한다'는 속담을 즐겨 인용한다.
이 평범한 속담엔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자기 멋대로 마음을 편히 살겠다는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두이 가는 길
바두이족은 자바섬의 서부 산악지대인 반텐(Banten) 지역에서 산다.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로부터 200㎞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자카르타에서 바두이마을로 가는 진입 기점이 되는 지방도시 랑카스비퉁(Rangkasbitung)까지는 시외버스가 다닌다. 약 3시간 걸리며, 요금은 2천500루피아(1천원).
랑카스비퉁에서 흑바두이마을 입구에 있는 치볼거(Cibolger)까지는 마을버스로 1시간쯤 걸리지만, 운행 시간이 불규칙하다.
이곳을 여행할 때는 여유있게 일정을 잡고 바두이마을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소수부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저녁엔 바두이족 고유의 음식을 즐기며 민속공연도 구경할 수 있다.
숙박은 보통 마을의 촌장집을 이용하므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흑바두이족이 사는 마을은 낮에는 텅빈듯하다. 남녀노소가 농사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문명을 거부하고 오지에 묻혀 사는 흑바두이족 노인.
흑바두이족은 검은색 계통의 전통 옷을 직접 지어 입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