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재의연극수첩]'천년의 수인' 역사속 인물
기사입력 1998년 05월 12일 15시 15분
연극은 역사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또 그 역사 속의 인물이 지닌 진실성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어렵고 힘든 이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독특한 발상으로 그려낸 역사연극 한편이 관심을 끌고 있다.
동숭아트센터가 제작, 연극으로 한국의 현대사와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각오로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동숭홀에서 개막한 `천년의 수인'(오태석 작_연출)이 그것.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인생역정을 축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진압군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대비시켜 뒤틀린 반세기의 현대사를 해석한 무대다.
서로 시대적인 배경이 다른 세명의 인물을 중첩시켜 시간은 흐르고 변화하지만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역사라는 공간 속에 인간의 삶은 과연 변화했는지를 묻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시간적으로 흘러왔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의 삶은 마치 수인과도 같이 역사의 틀 속에 갇힌채 오늘을 살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작_연출가인 오태석은 상상력의 귀재답게, 세명의 인물들을 한 공간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으며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겪는 순환구조를 의미롭게 형상화했다.
그가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극의 맛은 형식적으로는 달콤하면서도 내용적으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역할을 동시에 객석에 쏟아부었다. 도입부의 지루함이 후반부의 유니크함으로 결실을 맺어 완성도가 높아졌다.
중견 이호재(안두희)와 전무송(비전향장기수)의 불꽃튀는 연기는 좋은 앙상블을 이뤘다. 여기에 극단 목화의 신예들인 손병호(안두희 아들), 이명호(진압군), 박희순(헌 병), 김남숙(안두희 부인)의 성장이 눈부셨다.
늘 새로운 상상력과 독특한 연극만들기로 살아있는 집단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극단 목화의 감칠맛 나는 연기, 연극적인 기지가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였다. 동숭아트센터는 `어머니' `나 김수임'에 이어 또 하나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연극계에 선사했다.
6월14일까지. 화∼목 오후 7시30분. 금 오후 4시30분, 7시30분. 토∼일 공휴일 오후 3시,6시. (02)3673－4466.
[박용재 문화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