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사투(1)
기사입력 1998년 05월 10일 15시 26분
워렌이 시가를 문질러 껐는데 두동강이가 되어 부러졌다.
알나일 호텔의 객실안이었다.
앞에 앉은 피터슨은 헝클어진 머리에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꼬박 밤을 새우고 카이로에 돌아왔지만 비참한 결과였다.
"그 놈이 우리가 쫓는 것을 눈치챈 거야. 그리고…."
일본 정보국 요원들의 행동도 훤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사드는 하마니의 빈 저택에 들어가 CIA와 일본정보요원 양쪽에 총질을 해대고는 슬쩍 빠져나갔다.
덕분에 알렉산드리아의 바닷가에서 미일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첩보전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워렌이 다시 새 시가를 꺼내 물었다가 탁자 위로 내동댕이 쳤다. 신경질적인 행동이다.
"어젯밤 비슷한 시간에 이집트 공군전투기 두대가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면서 추락했어. 공군당국은 조종사들을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야."
그러자 피터슨이 충혈된 눈을 치켜떴다.
"보스, 그렇다면 그 전투기는."
"소노다 박사의 K-7장치가 낼수 있다는 위력과 똑같다. 전투기 안의 모든 컴퓨터가 정지했어."
워렌이 다시 시가를 집어 입에 물었는데 거꾸로 물었다.
피터슨의 시선이 그 곳에 있었지만 정신이 딴데 있어서 지적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장치를 하마니가 갖고 있을까요?"
피터슨이 뜬 소리로 물었지만 담뱃불을 붙이던 워렌이 다시 담배를 집어 던졌으므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야단났어. 본부에서도 인원을 대거 증원시킨다고 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워렌이 부릅뜬 눈으로 피터슨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고가 더 일어나기 전에 말이야."
일본정보국의 하세가와 부장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10분쯤이 지난 뒤였다.
피터슨을 내보낸 워렌은 그와 단둘이서 마주앉았다. 하세가와는 40대 중반쯤의 단정한 용모였으나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워렌씨, 어젯밤의 사건은 유감입니다. 그리고 귀국 정부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하세가와씨."
워렌은 일본정보요원들의 시체를 현장에서 모두 실어간 것이다.
만일 일본인들의 시체가 남아 있었다면 이집트 정부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남의집 안방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은 모욕이다. 더구나 이집트 정보당국도 K-7장치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세가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일본정부는 이번 사건을 미국정부와 협조하에 진행시키고 싶습니다."
그가 워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귀국 정부에 우리의 뜻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워렌씨."
"본부에 연락을 하지요. 하세가와씨."
워렌이 다시 시가를 입에 물었으나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가 실눈으로 하세가와를 내려다 보았다.
이미 이집트에 남은 일본정보국 요원은 두어명 뿐인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 당국이 일본인들의 입국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
본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본부에서 곧 귀국정부에 연락이 갈 것입니다. 하세가와씨."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