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힌두교 '작은왕국'
기사입력 1998년 05월 07일 13시 45분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는 수많은 사원과 아름다운 해변,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모래산 등이 있는 멋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해변 모래밭 위로 솟아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브로모(Bromo) 화산은 경이감마저 느끼게 하는 `자연의 돌연변이'다.
더구나 그 활화산 기슭에 소수 부족이 둥지를 틀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아직도 분화구에서 매캐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곳 화산 지역에 터를 박고 사는 사람들은 퉁거(Tengger)족이다.
퉁거족은 브로모 산을 `신의 산'이라고 부른다. 자신들의 신이 브로모 산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퉁거족이 숭배하는 이 화산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영산'인 것이다.
가파른 산 비탈에서 재배되는 꽃양배추, 옥수수, 감자 등은 그들의 주식이다.
브로모 활화산 바로 옆에 있는 바톡 산 기슭에는 퉁거족들이 신성시하는 힌두사원이 동화속의 왕궁처럼 버티고 있다.
이 사원은 퉁거족의 `성역'이어서 외지인들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한다. 1년에 딱한번 카사도축제가 열리는 10∼11월에만 외지에서온 여행자들에게 사원을 개방하는 것이다.
퉁거족의 주업은 밭농사이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부업도 한다.
브로모화산의 신비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 조랑말을 빌려주거나 숙소를 제공해주며 돈을 버는 것이다.
힌두교의 정통 후예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퉁거족을 만나기 위해 필자가 브로모를 찾았을 때 뜻밖의 일들이 많이 벌어져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첫번째로 필자가 당황했던 것은 외지인들을 대하는 그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퉁거족은 활화산을 보러 오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웃는 얼굴로 외지인들을 맞지 않았다.
그들은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을 볼 때마다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경계의 눈빛을 번뜩였다.
무슨 이유 때문에 퉁거족들은 외지인들을 그렇게 쌀쌀맞게(?)대할까? [계속]
브로모 가는 길
자바섬 동쪽에 있는 브로모로 가려면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수라바야는 발리 섬에서도 가까우므로, 발리 여행과 같이 묶어 일정을 짜면 더좋다.
수라바야에서 브로모까지는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 파스루안 프로볼링고를 거쳐 브로모지역의 대분화구에서 가까운 저모로자왕에 닿는다.
호텔과 민박집(게스트 하우스) 가게들이 있는 저모로자왕은 브로모화산지대로 가는 조랑말 여행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조차 난방시설이 없을 정도이므로 준비를 잘해가는 것이 좋다.
프란자칸 산에서 찍은 브로모의 활화산(스메루 산). 15분마다 분화구에서 유황 연기가 솟구친다.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은 가다사리마을에서 퉁거족들이 빌려주는 조랑말을 타고 브로모 화산으로 간다.
전설속에 나오는 신비스러운 부족처럼 활화산 주변에 칩거(?)하고 있는 퉁거족은 누구인가.
그들의 뿌리를 찾으려면 16세기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당시 자바 섬에서 번성했던 힌두 왕조 마야파힛 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밀려 멸망하면서 대부분 힌두교도들은 발리 섬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발리 섬으로 가지 못했던 극히 일부의 힌두교도들은 브로모의 고지대로 올라가 `작은 왕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퉁거족의 조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