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나고야통신] 팬이 있어야 야구판이 즐겁다
기사입력 1998년 05월 04일 14시 33분
봄이 화사한 빛을 한껏 내고 있다.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생명의 달, 청춘의 달, 어린이의 달이라고도 부른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달 말부터 소위 '골든 위크(황금 연휴)'가 시작됐다.
샌드위치 휴일까지 모두 쉬는 직장이 많아 지난달 29일부터 5일까지 1주일을 내리 쉬어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사람들로 러시를 이룬다.
게다가 5일 어린이날에 이어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성년의 날 등 기념일이 잇따른다.
야구장에도 관중이 꽉꽉 들어참은 물론이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에겐 5월이 '지옥의 달'이다.
남들이 쉬는 날에도 경기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달 우리팀 주니치의 스케줄이 이동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나고야돔 경기는 24경기 가운데 5게임 밖에 없고, 31일 가운데 25일을 호텔에서 자게 돼 있다.
경기가 없는 날이 7일인데 그런 날도 원정에서 원정으로 이어져 있어 호텔 신세를 져야 한다.
그 가운데 4일부터 15일까지의 11박12일과 19일부터 30일까지의 12박13일의 두 장기원정이 끼어있다.
이런 '죽음의 일정'이 짜여진 것은 기후 하마마쓰 도야마 가나자와 후쿠이 등 홈경기를 나고야가 아닌 인근의 연고 도시에서 갖기 때문.
버스로 1시간반 남짓 떨어진 곳이라도 꼭 하루전에 가서 훈련하고 호텔에서 자니 원정이나 다름없다.
12일∼14일 도야마 가나자와 후쿠이의 한신 3연전은 매일 경기를 마치고 이동해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정이다.
장기원정의 예를 들어보자.
오는 19일 나고야돔 히로시마전 야간경기가 끝나면 하마마쓰로 이동한다.
하마마쓰에서 야간경기 1게임을 하고, 다음날 도쿄로 이동해 야쿠르트와 3연전, 이어 구라시키에서 한신과 한게임, 고시엔에서 두게임을 치른다.
다음날 요코하마로 가 3연전을 치르고 나고야로 돌아온다.
이러니 선수들이 파김치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인 점은 매년 다른 팀들도 이와 비슷한 일정이 한번씩 있다는 것.
나는 3년째이기 때문에 그나마 적응이 돼 있지만 처음 겪는 데다 매경기 출전해야 하는 (이)종범이가 잘 견뎌낼 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워낙 페이스를 잘 조절하는 선수이니 만큼 제대로 해낼 줄 믿는다.
이렇게 보면 위로는 홋카이도, 아래로는 규슈에 이르는 일본은 참 긴 나라다.
그래도 우리들을 보고 즐거워하는 팬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어디든 즐겁게 달려간다.
지난번 해태 마의웅사장께서 나고야에 오셨을 때 한국 프로야구의 관중이 줄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아쉬웠다.
팬이 있어야 선수들이 존재한다.
한국의 팬들께서 IMF 시름도 잊을 겸 야구장을 자주 찾아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4일 오전 나고야의 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