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79)훔쳐보기
기사입력 1998년 05월 04일 14시 33분
훔쳐보기 세상이 된 모양이다.
TV 브라운관에서는 몰래 카메라가 극성이다. 어떤 백화점에서는 여자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목욕탕의 여탕을 훔쳐보다 걸린 치한도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다.
영화에서도 훔쳐보기는 하나의 장르가 되다시피한 느낌이다.
`모텔 선인장' `억수탕' `창' `산부인과' `마리아와 여인숙' 등 최근의 화제작 가운데 훔쳐보기를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삼은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모텔 선인장'은 모든 악동（惡童）들의 `어린시절 꿈'이었을 여관방 훔쳐보기의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해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의 기획 자체가 `저렇게 수없이 많은 은밀한 여관방에서는 매일밤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로 4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름－집착과 도피'에서는 진희경과 정우성 등이 출연, 사랑과 섹스를 보여준다. 섹스는 식은죽처럼 진부하다. 섹스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어주는 매개가 못된다.
영화의 주제는 사랑과 섹스의 진실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그러나 여관방이라는 은밀하고 음습한 공간을 통해 훔쳐보기를 시도해 보인 점이 흥미롭다.
외국 영화 중에서는 훔쳐보기 영화로 히치코크의 `이창'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관음증과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제프의 직업이 사진기자라는 점부터가 훔쳐보기를 암시하고 있다. 제프는 다리가 부러져 기브스를 한채 의자 생활을 하게 된다. 할일이 없어진 제프는 창문을 통해 맞은편 아파트 사람들을 훔쳐보기 시작한다.
처음 훔쳐보기는 단순한 시간 죽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훔쳐보기는 제프의 숨겨진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제프는 맞은편 창문의 한 남자가 아내를 죽였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제프는 왜 의심하게 됐을까. 제프는 자신의 애인을 귀찮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찮은 애인을 떼어버리고싶은 잠재적 욕망이 그같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면 된다.
관객은 사진기자인 제프의 시점에서 영화를 본다. 그것은 카메라@조작이기도 하지만, 진실은 제프와 관객의 욕망이 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치코크의 후예들은 `이창' 이후 무수히 많은 훔쳐보기 영화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우체국 직원인 토멕이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여인 막다의 일상과 섹스를 훔쳐보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아내와 이웃남자의 밀회를 훔쳐보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사내가 등장하는 `피아노' 등등.
어쩌면 훔쳐보기는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보여주는 증명서일지도 모른다. 영국판 훔쳐보기의 원조인 `재단사 톰（피핑 톰）'부터가 알몸으로 말을 탄 백작부인을 엿보다 눈이 먼 비겁한 사내의 대명사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