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29)
기사입력 1998년 05월 03일 15시 08분
"예전처럼 육안으로 보지 않아도 됩니다."
마틴이 손끝으로 앞에 놓인 모니터를 가리켰다.
벤에 장착된 15인치 화면에는 붉은색의 점 세개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색의 점 다섯개는 이쪽의 현재 위치였다. 위성에서 찍어보낸 화면이다.
마틴은 마우스를 조종하여 뒤쪽의 붉은점 하나에 맞추더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흐린 영상이 나타났다. 승용차였다.
화면을 조정하자 영상은 선명해졌는데 트렁크에 붙인 포드의 엠블렘도 보였다.
싸드의 부하들이 타고있는 차였다. 이쪽과의 거리는 4,250@였고 속력은 시속 57㎞였다.
이준석을 돌아본 마틴이 수줍게 웃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는 TV드라마에 나오는 배우같았다.
"과학의 산물입니다. 자극은 줄었지만 정확하지요."
저녁 여덟시 반이었다. 알렉사드리아에 도착한지 세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싸드는 벌써 네번째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승용차에서 밴으로 옮긴 이준석은 이제야 CIA의 추적장치를 보았다.
옆쪽에 잠자코 앉아있던 피터슨이 이준석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대위, 이것 받으시오."
그가 건네준 것은 M－24 저격총이다. 스코프가 달린 M－24는 무게가 7㎏이 넘어 드라구노프보다 3㎏ 가깝게 더 무겁다.
피터슨이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준석을 보았다.
"드라구노프보다 월등한 총이오. 더구나 미군용이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몇번 쏘아 보았습니다."
이준석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20발들이 탄창을 빼내더니 약실 안에 끼워진 7.62밀리 탄알 한개도 빼냈다.
M－24는 장탄수가 드라구노프의 두배였다.
"당신의 기록을 보았소. 최고더군."
피터슨이 그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없애도 됩니다. 하지만 싸드는 잡아야 합니다."
이준석의 시선을 받은 그가 한쪽 어깨를 치켰다가 내렸다.
"뭐, 급한 경우에는 다리나 엉덩이를 쏘시오. 그 놈은 살려서 잡아야 합니다."
밴은 지중해를 오른쪽에 두고 아부키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북쪽 지역이다. 그 시간에 하심 하마니는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의 별장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사내는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는데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아랍인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하마니씨, 이건 엄청난 거래요. 그리고 이런 전례도 없고."
넓은 방안에는 그들 둘 뿐이었지만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우리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장치의 위력을 증명해 주셔야겠소."
하마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지요. 당신이 그러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소."
"증명되는 즉시 대금을 지급하겠습니다."
하마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옆방으로 가십시다."
사내는 리비아 정보국 대령 모하메드였다.
국가 지도자이며 국가원수인 카다피가 집권 30년이 가깝도록 대령 계급을 붙이고 있었으므로 대령이면 원수와 동급인 셈이다.
그들이 들어선 방은 조금 좁았는데 한쪽벽에 컴퓨터 한대가 놓여졌고 옆에는 송신기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두 사내가 그들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