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안] 팔방미인 '거침 없어요'
기사입력 1998년 05월 03일 15시 08분
서울. 어느 고층빌딩. 창문마다엔 칼바람이 머물고. 창가에 시름없이 기대앉은 20대 여자.
이윽고 수첩을 꺼내, 깨알같이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이제, 지우지 못한 단하나의 이름. 한동안 바라보다, 핸드폰을 집는다.
`언니, 미안해. 마지막 얘기니까 들어 줘야해...'
그리곤, 여자는 몸을 날린다. 십여층의 높이를 단숨에 줄인다. 아스팔트 위 눈밭. 얇은 원피스 차림의 사체. 손안의 핸드폰은 영악스레 울어대고.
영화 `기막힌 사내들'의 한 장면. 오는 6월께 프랑스 파리에서 선개봉, 국내에선 후개봉된다.
몸을 날린 여자-탤런트 채정안（20. 본명 張庭安）.
"이 영화엔 `반지 낀 여인' `전화하는 여인' 등의 세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전화하는 여인'역을 맡은 채정안. 출구없는 세상에 절망, 자살로써 `출구있는 세상'을 추구한다.
이 영화의 감독@장진. STV미니 드라마 `달팽이'에서 채정안을 보고 단번에 말려 든다.
화장기없는 청초한 얼굴, 큰눈, 건강한 피부, 그리고 페이소스가 깔린 분위기라니!
채정안. 탤런트, 배우, 모델 등으로 불린다. 부산 태생. 7살때부터 서울에서 산다. 녹번초등학교-예일여중.고-동국대 연극영상학부 2학년.
고3. 화장품회사 존슨 앤 존슨이 공모한 `깨끗한 얼굴'에 1등으로 뽑힌다.
"황당했다. 남동생이 나도 몰래 화장품 회사에 내사진을 보냈으니..."
이로 인해 `쎄씨' `피가로' 등 잡지의 표지모델, 비타민 `레모나'의 CF모델도 한다. `상큼하다' `튄다' `깨끗하다'는 반응.
채정안. 본디 성악 지망생. 모델물을 먹다보니 맘이 변했다. 탤런트나 모델에 구미가 당겼다. 동국대 연극영상학부에 응시, 당연히 낙방.
연기실습을 두달정도 했다지만 `날탕'이었기 때문. 재수（再修）. 이 와중에도 STV `TV가요 20'에 VJ로 활동.
이때 벌써 에드립을 활용, `끼'를 보인다. 소개하는 노래에 따라 목소리, 제스처, 코디를 달리했다. `순발력있는 애숭이'란 평을 듣는다.
이어 MTV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도 출연했지만, 별로 였다.
대입 준비는, 약게 했다. 대학생 친구들이 `쪽집게 과외'（?）를 무료로 해줬다. 연극배우 신철진에게선 연기를 배우고.
96년. 1월중순. 동국대 입시. 연기시험장. 불이 꺼지고 스포트 라이트가 채정안을 압박했다. `헴릿'의 오필리어역.
"떨렸다. 심사교수들의, 눈빛이, 승냥이 같았다. 흥분하다, 웃다 우는, 광기（狂氣）스린 연기를 했는데... 앞의 수험생들이 워낙 잘해, 합격은, 긴가민가했다."
시험 종료후 채정안의 머리에선, 김이 모락모락났다. 그 추운 날에.
채정안의 매니저 이정희（여.30）는 꿈까지 꿨다. 스키장에 갔는데, 인기 탤런트 수십명이 `정안이가 살집'이라며 원목으로 집을 짓고 있었다. `합격 예감'!
97년 5월. 대학 1년. 몇몇 TV에서 MC를 본다. 김국진과의 공동 MC때의 삽화.
김국진이 좀은 썰렁한 말을 했다. 대뜸 `시끄러워∼요'. 피곤하다고 하면 `밤새지 말란 말이야'로 응수. 김국진의 유행어를, 훌륭하게 재활용했다.
가을. STV미니 드라마 `달팽이'. 연예인 지망생@미순역으로 뜬다.
단발머리를 긴 가발로 덮었다. 미순의 이미지 때문에. 우아, 그랬더니 인터넷에 떴다.
`청초한 여자가 섹시한 여자가 됐네.' `연기도, 이젠 제법이야.'
채정안. 1m72cm, 49kg. 긍정적, 낙천적이다. 덜렁댄다. 때론 집착이 강하다.
주량은 소주 1병. `마시고 죽자'가 아닌, `마시고 살자' 스타일.
포킷볼의 명수. 영화광. 최근에 영화 `아이언 마스크'를 봤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리미 아이언스는 정말 근사했다.
"괜찮은 남자는?...폭이 크고, 능력있는, 그런 남자면... 얼굴은 기본만 돼도 오 케이. 그러나 아직 결혼은 노우!"
[서병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