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28)
기사입력 1998년 05월 01일 13시 51분
방으로 들어선 시노하라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조장, 공항에서 모두 잡혔습니다."
털썩 소파에 앉은 그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모두 공항에 억류 되었다가 출국조치가 될것 같습니다."
가네다는 어금니를 물었다. 이집트로 들어올 증원요원을 말하는 것이다.
제각기 완벽한 신분증을 갖고 있었으니 CIA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할 수 없다. 우리만이라도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결심한듯 말한 가네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오후에야 겨우 핫산으로부터 하마니의 은신처가 알렉산드리아에 있다는 자백을 받아냈던 것이다.
방으로 요시에가 들어섰으므로 가네다는 얼굴을 폈다.
"요시에씨는 당분간 이곳에 계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가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에드다르브 알아흐마르지역의 단독주택이다. 이준석이 도망친 후로 거처를 다시 옮긴 것이다.
"우린 며칠간 이곳을 비웁니다."
요시에가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가네다는 조금 싱거워졌다.
K_7장치의 기득권을 주장해온 요시에였고 정보국에 협조를 요청할 때에도 같이 행동하는 조건을 붙였던 여자인 것이다.
이준석이 도망친 후로 그녀가 침울해져 있다는 것을 가네다는 눈치채고 있기는 했다.
가네다가 부하들과 함께 거처를 떠난 것은 저녁무렵이었다.
일행은 모두 여섯명으로 세대의 승용차에 둘씩 분승했는데 이미 CIA의 정보를 받은 이집트 정보국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고 제각기 시간을 들여 분장을 했다.
가네다는 그냥 동양인 관광객 모습이었으나 부하 셋은 로브를 걸친 아랍인이 되었는데 어색했다.
그들이 떠나자 단층주택은 깊은 정적에 싸였다.
집은 꽤 컸으므로 집안의 모든 전등을 켜놓고 응접실에 앉아있던 그녀는 30분도 배겨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뜰로 나오자 어둠속에서 사내 하나가 다가와 섰다.
"어디 가십니까?"
가네다가 남겨놓은 경비원이다. 그는 뒤쪽방에 감금하고 있는 모리스와 핫산을 감시하는 역할이다.
"밖에 나갔다 오겠어요."
요시에가 조금 거칠게 말하자 그는 난처한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네다로부터 이런 상황에서의 지시를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요시에가 대문을 나설때까지 사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녁 8시 무렵이어서 아랍인 거리는 뒷골목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가 저물어 열기가 가셔지면 차도르를 걸친 여자들도 떼지어 나오는 것이다.
요시에는 야구 모자를 눌러쓴 데다 바지에 잠바 차림이었다. 앞에서도 제법 유심히 봐야 여자인 것이 구별될 정도이다.
그녀는 시장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마침 생선시장이어서 비린내가 진동을 했고 상인들은 제각기 목청을 높여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어깨를 부딪히며 밀리기도 하면서 걷던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딸꾹질을 두어번 하다가 조금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다시 소매로 눈을 씻은 그녀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눈물이 왜 나는지 그리고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