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재의연극수첩] 뙤약볕-죽음과 소녀
기사입력 1998년 04월 30일 14시 33분
수준높은 연극 만을 보여온 극단 미추（대표 손진책）가 두편의 무대를 선보였다.
문예회관소극장에서 공연한 `뙤약볕'（14∼22일）과 요즘 인기리에 공 연 중인 `죽음과 소녀'（25∼5월 2일）가 그것이다.
이 두 작품은 문학성이 짙게 배어나는 탄탄한 원작에다가 연출가들의 맛깔스런 공간설정과 인물의 형상화가 독특하고 볼만한, 그래서 아름다운 무대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박상륭의 소설을 극화한 `뙤약볕'은 신예 깅광보가 각색_연출하고 극단 미추의 잘 훈련된 배우들이 출연, 하나의 `몸극'으로 주제를 형상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언어）을 숭상하며 살아가는 한 섬마을 사람들이 허상에서 벗어나 인생의 새로운 희망을 어떻게 찾아가는가, 그 끝은 어디인가하는 주제를 무난하게 그려냈다.
김광보는 문예회관소극장을 시원스럽게 활용, 배우들의 움직임과 한국적인 소리를 이용하여 극의 분위기를 구축, 원작의 문학적인 의미를 파내려고 한 의도가 좋았다.
극 전체가 원작의 힘에 눌려 다소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졌으나, 젊은 연출가로서 어려운 작품을 그만하게 무대형상화해낸 것은 높히 살만했다.
특히 정태화 이기봉 전일범 정호붕 서이숙 황연희 등 미추 배우들의 신체연기는 독특했으며 김준섭의 무대미술, 이유숙의 의상, 황강록의 음악도 참신했다.
`뙤약볕'에 이어 선보인 `죽음과 소녀'（아리엘 돌프만 작, 손진책 연출）는 연출과 연기가 잘 어우러진 빼어난 무대이다.
연극을 하나의 신앙처럼 여기는 중견연출가 손진책은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는 극적 구성으로 일품요리를 만들어내듯 극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한때 성폭행을 당한 한 여인이, 자신의 정신분란을 실제적 행동으로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 타협과 양보, 진정한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하에 순환하는 인간의 삶을 절제미를 통해 그려낸 것.
세명의 연기파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압권이다.권성덕은 가해자인 로베르또역을 치밀한 계산으로, 김성녀는 피해자인 빠울리나역을 사실적으로, 송영창은 빠울리나의 남편인 헤라르도역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
권성덕의 절제미, 김성녀의 폭발력, 송영창의 정형미는 환상적인 연기앙상블을 만들어냈다. 미추의 저력을 보여준 두 무대다. 오후 4시30분, 7시30분. （0351） 879_3100. [문화팀장]
